#20 플리트비체_몇 년에 한 번씩은 길을 나서야겠다

서른 살에 떠난 30일간의 배낭여행 21/30

by Hongchic
플리트비체 H코스 > 자다르 야경
일찌감치 조식을 먹고 짐을 싸서 체크아웃을 했다.


짐은 리셉션에 맡겨두고 호텔에서 스탬프를 찍은 티켓을 챙겨서 공원으로 향했다. 어제는 하류에서 상류로 가는 코스를 구경했다면, 오늘은 상류에서 하류로 내려오는 코스를 갈 차례. 버스를 타고 2번 스테이션에서 3번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화창한 날씨 덕분에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 보였다. 어제 하류에서 상류를 구경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가득 담으며 트래킹을 즐기기 시작했다. 알록달록 물든 단풍은 풍경에 색을 더해주었다. 가을의 트래킹은 정말 꿈같은 일이다. 비수기인 탓에 관광객이 거의 없어 이 모든 풍경을 거의 내 것처럼 여길 수 있다. 멋진 가을 여행!

아 이렇게 충만한 가을이라니

한참을 걷다 보니 페리 타는 곳에 도착했다. 이 곳에 있는 푸드코트가 플리트비체의 유일한 식당. 고기 페티와 베이컨이 들어 있는 플리트비체 버거를 주문했다. 경치 좋은 곳에 앉아서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우리말이 들린다.

“노원구 어디서 오셨다고요?"

“너도 결혼해서 내년에는 아내와 함께 와야지.”

단체 관광객들의 대화. 반갑기도 하면서 정확하게 들리는 그 모든 내용의 생소함에 화들짝 놀랐다. 혼자 여행 다니며 가장 어려운 순간은 역설적으로 한국인을 만날 때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재된 눈치나 예의 차리기가 한국인을 만났을 때 발동된다. 그들이 나를 불편하게 한다는 뜻이 아니고, 스스로 그렇게 돼버린다. 저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할 지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걱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호텔에서 제공해준 1일 추가 입장권

한참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자다르로 가는 버스를 타기에는 약간 촉박한 상태. 다행히 어제 B코스를 구경하던 중 길을 잘못 든 덕분에 지름길을 알아놨다. 동굴을 통과하는 계단을 열심히 올라가야 하지만, 단 10분 만에 입구로 나갈 수 있다. 모든 실수가 나쁘게 이어지는 법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제의 시행착오가 오늘은 큰 도움이 됐다.

호텔에서 짐을 찾고, 미리 예약한 플릭스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플릭스 버스는 동유럽 권을 이어주는 버스로 앱에서 쉽게 예약하고 탑승할 수 있다. 장거리의 경우, 버스 내 콘센트 플러그와 와이파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편리하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에서 자다르, 자다르에서 스플리트 이렇게 총 세 번의 플릭스 버스를 이용했고 모두 만족스러웠다.

크로아티아에서 버스 여행을 할 때는 꼭 맨 앞자리에 타보세요~ 황홀한 경치가 펼쳐집니다.
버스에서 본 풍경. 저걸 보느라 잠을 잘 수 없었다.

약 2시간 30분 정도를 달려 자다르에 도착했다. 자다르 숙소는 버스 터미널 옆에 위치한 호스텔. 관광지가 밀집된 올드타운까지는 거리가 꽤 멀지만 터미널 바로 옆에 있어 무거운 짐을 들고 이리저리 방황하지 않아도 된다. 호스텔에 도착해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요청하니 사장님이 내 이름을 묻는다.

“Are you Hong?”

“That’s right. You already know my name!”

호스텔은 기존에 호텔방으로 사용하던 객실에 침대를 추가해 변형한 느낌이었다. 2층 침대와 싱글 침대가 섞여 있어 어지러웠지만, 화장실이 별도로 있어 기분 좋게 방에 짐을 풀었다. 왠지 사장님이 미리 내 이름을 알고 있는 모양새가 오늘 내가 유일한 체크인 손님인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2박 3일 간 자다르에 머무는 동안 아무도 나의 6인실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지 않았다. 눈치 게임에서 성공한 느낌. 편하게 옷도 갈아입고, 부스럭 거리면서 짐도 쌀 수 있어서 매우 편했다. 다만 방이 1층 같은 반지하라 저녁에 좀 추웠지만, 아침 조식도 서비스도 크게 부족함이 없었다.

자다르에 도착해서 먹었던 오징어 먹물 리조또와 화이트 와인

올드타운에서 야경을 보기 위해 우버를 이용해 이동했다. 편도 우버 이용료는 대략 20쿠나. 한화로 약 3천 원 정도의 가격이다. 픽업 위치와 목적지, 그리고 결제까지 모바일로 한 번에 해결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한 것은 물론, 해외여행에서 가장 쉽게 쓰는 택시비 바가지를 피할 수 있어 유용하다. 2년 전,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모바일 택시 서비스의 홍보 담당자였던 나는 한국에서는 법적인 이슈로 금지돼 있는 우버 X 서비스를 사용하며 다시 한번 디지털 혁신을 체감했다. 기존 사업자와 균형을 잘 맞추는 선 내에서 규제 완화가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다양한 영역의 사업과 이익 단체 간의 이해 상충으로 인해 쉽지 않겠지만…

자다르 도착! 무대 세트장 같은 느낌~

자다르의 야경은 매우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바다인지. 그동안 거쳐온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 슬로베니아 모두 내륙 국가로 바다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맑은 밤하늘에 밝게 떠 있는 초승달과 넘실대는 밤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속 평화를 즐겼다. 아, 이런 곳에서 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말이지. 화이트 와인을 곁들인 오징어 먹물 리조또를 저녁으로 먹고, 후식으로 피스타치오 젤라또를 사 먹은 뒤, 다시 우버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혼자 다니는 여행은 재밌고 평화롭다. 몇 년에 한 번 씩은 혼자서 길을 나서야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평화로운 자다르의 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