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자다르_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하며 살고 싶다.

서른 살에 떠난 30일간의 배낭여행 22/30

by Hongchic
자다르 산책


자다르처럼 여유로운 곳에서는 부지런 떨 필요가 없다.

아침에 조식을 먹고, 한참을 뭉그적거리다가 아침 10시경 올드타운으로 가기 위해 우버를 불렀다. 오늘은 쉬엄쉬엄 바다를 구경하고 자다르의 작은 골목들을 누비다가 해가 저무는 모습을 구경할 예정이다. 바다 앞에 앉아서 책을 읽을 요량으로 비치 타월도 챙겼다.

뮤지컬 세트장 같은 자다르

성도나투스 교회 종탑에 올라 마을 전경을 구경했다. 아니 그런데 난간이 내 키만 하다. 까치발을 들지 않고서는 한 치 앞도 볼 수가 없다. 가방에서 셀카봉을 꺼내 풍경 사진을 찍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다른 관광객들이 웃는다. 여러분들이 즐거우셨으면 저는 그걸로 충분합니다. 쳇.

내 키만한 난간ㅋ
셀카봉으로 촬영한 난간 밖 세상

정말 정처 없이 걸었다. 바다를 보며 걷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 바닥이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골목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부두를 따라서 걷기도 했다. 그 사이 하늘의 구름이 걷히고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정처 없이 걸었던 자다르 해변
너무 아름다운 바다

혼자 여행하며 늘은 기술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남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기술이다. 요령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카메라를 목에 매고 다니는 분을 타깃으로 삼을 것. (좋은 구도를 알고 잘 찍어 주신다.)

2. 최대한 불쌍하게 말할 것. (Could you take a picture for me?)

3. 사진을 찍고 난 뒤,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고맙다 충분하다고 말할 것. (그분은 나를 찍어주기 위한 사진작가가 아니다. 마음에 안 들면 다른 분에게 요청하자.)


다양한 사람이 나의 사진을 찍어준다는 것은 정말 다양한 결과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스마트폰 사용이 서툰 분에게 부탁했을 때는 갑자기 나의 동영상이 찍혀있어 놀랍고 재밌었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뜻밖의 인생 샷을 구할 수 도 있고, 얼굴은 크고 몸은 작고 다리는 짧은 황금비율의 사진이 찍혀있을 수도 있다. 뭐 어떠랴. 그것도 나고 이것도 난데. 나의 요청에 흔쾌히 사진을 찍어주신 다양한 국적의 모든 분께 감사를 표한다.


자다르에서는 한국인 단체 관광객 중 한 중년의 부부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분들은 셀카봉과 삼각대를 모두 소지한 베테랑답게 가로로, 그리고 세로로 나를 멋들어지게 찍어주셨다. 그리고는 혼자 여행하는 거냐고 물은 뒤 꼭 안전! 안전하게 다니라고 말씀해주셨다. 마음이 훈훈해졌다.

그리고 몇 발자국 떨어진 뒤, 아저씨가 아내에게 이렇게 얘기하는 게 들렸다.

“거봐 내가 한국인일 거라고 했지?”

ㅋㅋㅋ 아저씨 다 들려요.

한국인 아저씨가 찍어주신 사진. 감사합니다~!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고 이른 저녁을 먹으러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시푸드 스파게티와 맥주를 시켜 토마스 만의 키 작은 프리데만 씨를 읽으며 맛있게 먹었다.

여유롭게 커피 한 잔
맛있는 해물 파스타와 맥주, 그리고 키작은 프리데만씨

이제 기대하던 선셋을 볼 차례. 나는 바닷가 가장 끄트머리에 비치타월을 깔고 가부좌를 튼 뒤,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가는 바다를 구경했다. 해는 절대 넘어가지 않을 것처럼 공중에 자리를 잡고 있더니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태양계의 중심도 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데, 한 사람의 영광이나 명예는 얼마나 더 쉽게 사라질 수 있는 것인가. 우주의 시간으로 쳤을 때, 0.0000000001초도 되지 않을 나의 인생을 어떤 순간들로 채워 넣으면 좋을까. 답답한 사무실에 앉아서 생명과 돈을 맞바꾸는 일이 과연 나에게 어떤 가치가 있을까. 더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하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자다르의 선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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