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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chic Apr 09. 2017

쇼코의 미소

책을 선물해준 시몽에게 보내는 편지



캐서린 안녕하세요. 시몽이에요.

제가 드디어 첫 월급 탔습니다!

첫 월급 받으면 캐서린한테 꼭 선물을 하고 싶었는데, 이 책이 너무 좋더라구요~!

아직 안 읽어보셨길 ㅜ.ㅜ 다독왕 캐서린

항상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17.01.25 시몽이가


고마워요. 시몽~

분홍빛의 예쁜 책을 받아 들고, 너무너무 부끄러웠어요.

시몽이 나를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과연 제가 좋은 사람일지 수많은 고민을 하게 됐답니다.

저는 상냥한 사람이 아니에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생각처럼 쉽지가 않아요.

늘 저는 저를 생각하고, 저를 위해 계산하고, 저의 안위를 가장 중요히 여긴답니다.

시몽의 쪽지를 받고, 저는 제가 발가벗겨진 것처럼 부끄러웠어요.

그래서 선물을 받자마자 선뜻 책을 펴볼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책을 선물하는 것은 정말 고민이 많은 일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좋아할까? 필요한 책일까? 어떤 이야기가 도움이 될까? 이런 혼란스러움을 감당하며 골랐겠지요.

그래서 더 고마워요. 그리고 책은 정말 좋았습니다.

오래간만에 한 장 한 장 아껴서 읽은 책이었어요.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는 마침 1,000여 일 동안 물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들어 올려지던 날이었어요. 마음이 아파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희미해진 제 자신이 미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제가 살고 있는 고장에서 벌어진 일임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한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아이들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좋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가장 좋았던 편은 한지와 영주였어요. 저는 늘 제 스스로가 관계를 망쳐버린다고 생각했어요.

차갑게 식고, 실망하고, 무신경해지고, 그런 스스로에게 실망한 것을 숨기려고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체하고.

늘 반복되는 싸이클 속에서 저를 견뎌낼 수 있는 사람들만 주위에 남게 되지요. 저는 상냥한 사람이 아니에요.

오랜 연애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저를 그가 견뎌냈기 때문일 테지요.


글 속의 영주는 한순간 변해버린 한지를 감당해내지 못했어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읽으면서 한지가 영주의 한글로 된 일기장을 꼭 읽어봤으면... 하고 간절하게 바랐습니다. 하지만, 둘 사이는 영영 회복되지 않았죠. 영주는 차가운 남극에서 아프리카로 돌아간 한지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기원하는 것으로 관계를 종결시켜버립니다.


그렇게 끝낼 수도 있는 게 인간관계겠지요. 그와 아프리카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아픈 동생을 돌보고, 싸우고, 삶을 나눈 상상을 했어도 그냥 끝내버릴 수 있는 게 인간 관계인 걸까요? 둘이 나눴던 대화도 그렇게 쉽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는 건가요? 그렇다면, 인간은 얼마나 잔인한 동물인가요.

애틋했던 사람들과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 대신, 아무와도 애틋해지지 않는 길을 택하는 건 어떨까도 생각해봤습니다. 너무 많이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을 연습해야겠어요. 시몽, 부디 너무 많은 마음을 주지 말아요. 상처도 받지 말고요. 예쁜 마음 그대로를 잘 가꿔주세요. 저는 그렇지 못해서 정말 못난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저는 가식 덩어리가 됐습니다. ㅎㅎ 누군가 힐난해도 할 말이 없어요.

제가 선택한 가장 편한 방식이니까. 날 감당하지 못하는 이들은 떠나면 그만이니까.

시몽에게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져서 자꾸 엉망이 되는 마음을 추스리게돼요~

제가 더 고맙습니다.


부끄러움이 많아서 직접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어요ㅠ

오랜만에 독후감을 남겨볼 겸 아무도 보지 않는 이 곳에 시몽에게 보내는 편지를 남깁니다.

사무실에서는 '좋았다'라는 세 글자로 감상평을 일축할 거예요. 저는 그런 못난이예요.

오늘은 일요일이고, 저는 곧 교회에 가서 일주일 간의 잘못을 고백하려고 합니다.

부디 용서받을 수 있어야 할 텐데~ㅎㅎ


내일 만나요.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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