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 <1인용 식탁>
1 단계 - 커피숍, 빵집, 패스트푸드점, 분식집, 동네 중국집, 푸드코트, 학원가 음식점들, 구내식당
2 단계 - 이탈리안 레스토랑, 큰 중국집, 한정식집, 패밀리레스토랑
3 단계 - 결혼식, 돌잔치
4 단계 - 고깃집, 횟집
5 단계 - 돌발 상황
혼자먹는 식사는 지겹다.
어쩌다보니 회사에서 외톨이가 돼버린 주인공. 그녀가 가장 곤혹스러울 때는 점심 시간이었다.
매일 한 시간씩 할당된 그 시간을 패스트푸드, 도넛츠, 카페, 분식집을 쳇바퀴처럼 맴돌던 그녀는 결국 혼자 밥을 먹는 법을 알려주는 학원에 등록한다. 스테이크는 포크와 나이프를 이용해 강-약, 강-약, 한정식은 밥, 반찬, 국을 아우르며 강-약-중간-약. 그녀는 학원에서 알려준 음식 별 리듬을 철저히 익히며 혼자 밥먹는 상황에 익숙해진다. 그러나 3개월 간의 훈련을 마치고 수료를 코 앞에 둔 상황에서 주인공은 별안간 재수강을 선택한다.
인생이 제비뽑기라면, 내가 태어나기 전 저 하늘 어딘가에서 어떤 환경에서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친구와 어울리며 살아갈지 하나씩 제비를 뽑아 결정되는 거라고 가정한다면, 나는 어떤 나라에서 살지를 결정하는 제비를 살짝 잘못 뽑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때는 10년 전 내가 고3이었던 어느 주말, 수능을 앞두고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배고픔에 못이겨 분식집에서 치즈라면을 시켰을 때다. 치즈라면 하나를 먹는 데 얼굴이 얼마나 화끈 거리던지... 그 수 많은 분식집테이블에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유일하게 알 두꺼운 안경을 쓰고, 앞머리를 삔으로 힘껏 찌른 나 하나였다. 라면을 코로 먹으면서, 왜 혼자 밥먹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 대한민국에 태어난 건지 엄청나게 원망했다. 물론 주변에서 밥을 먹던 사람들은 조그맣고 못생겨서 혼자 밥까지 먹는 나에게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았을 테지만.
혼자 먹는 사람이 메뉴보다 더 고려하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다.
책에서는 혼자 밥을 먹는 것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타인의 시선. 아무리 뚫어져라 쳐다봐도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는 이 사소한 것이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를 얼마나 옭아 매는가. 혼자 밥먹는 것부터 시작해 학벌, 직장, 자동차, 집, 결혼, 출산, 여행 등 생활의 전 영역을 저 타인의 시선이라는 것이 장악하고 있다. 이 중 단 한가지라도 대한민국 평균에 이르지 못하면 곧 바로 낙인이 찍히고 만다. 당신은 '비. 정. 상' 입니다 라고.
수료증은 세상의 축을 바꿔놨어. 이제 모든 건 다 내 중심으로 도는 거야.
고깃집에서 삼겹살을 홀로 먹는 연습을 하던 그녀에게 예전에 학원을 수료했던 달인이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2년 전 전주를 여행해 혼자 시켰던 콩나물 국밥이 생각났다. 내 앞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국밥을 보며 이렇게 다짐했다. '나는 지금부터 콩나물 국밥만 생각할거야. 콩나물이 얼마나 탱글탱글한지, 국물이 얼마나 시원한지만 생각해야지' 스마트 폰이나 책, 신문 등 다른 읽을 거리는 일부러 꺼내지 않았다. 대신 쫄깃하게 씹히는 오징어의 식감, 속이 확 풀어지는 뜨끈한 국물맛을 충분히 만끽했다. 그러다 손을 들고 이렇게 외쳤다. '이모, 여기 모주 한 잔만 주세요.' 그때 아마 난 깨우쳤던 것 같다. 타인의 세계가 침범하지 않은 순수한 나의 내면이 얼마나 풍성할 수 있는지. 그렇다. 내가 '나'라는 존재로 태어난 이상, 원래부터 모든 건 다 내 중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이나 편견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나만의 세계를 견고히 다지겠다고 결심했다.
혼자 먹는 식사는 즐겁다.
재수강을 결심한 주인공은 혼자 먹는 식사에 대해 신청서에 이렇게 적어냈다. 그녀에게 혼자 먹는 식사는 이제 더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지겨움과 슬픔의 원인도 아니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탐구하고 충족시키는 만족의 시간이다. 홀로 남은 상황에서도 나의 마음을 충실히 읽고, 따를 수 있다면 나는 더이상 혼자가 아니며, 외롭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나는 평생 친구이자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다. 함부로 남의 잣대와 시선을 통해 자신을 판단하지 말자. 나. 그리고 당신은 그 누구보다 스스로에게 소중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