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일 넘는 여정 동안,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우리의 국적을 묻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놀랍게도 그들은 이미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고 있다.
"Are you Korean?" (당신은 한국인인가요?)
"Yes, We came from South Korea. How did you know we were Korean?"
(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왔어요. 우리가 한국인인걸 어떻게 알았나요?)
"I heard you guys talking. I heard korean in a Korean drama."
(당신들이 이야기하는 걸 들었어요. 한국드라마에서 한국어를 들었거든요.)
우리 대화를 듣고, 무슨 내용인지 이해하진 못하지만 한국어임을 눈치챘고, 그저 한국인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 한국인이라고 대답하면, 그들은 신이 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간다.
"I like Korean drama a lot" (나는 한국 드라마를 정말 좋아해요.)
"I love BTS, Black pick, seventeen. I love K-pop." (나는 BTS를 블랙핑크를, 세븐틴을 사랑해요.)
BTS의 백악관 연설하는 모습.
하나같이 어린아이처럼 밝은 모습으로 이야기를 건넨다.
내가 스페인 사람을 만나 <종이의 집> 시리즈를 다 봤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내가 아는 건 오직 <종이의 집>뿐이지만, 그들은 <이상한변호사 우영우><이태원 클래스>, <태양의 후예>, <꽃보다 남자>, <내 이름은 김삼순>까지 이야기한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의 한 소녀에게서 18년 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들었을 땐 경이로운 기분이었다.
스노클링을 하러 간 이집트 샴엘셰이크의 '파난 비치' 카페에서 귀여운 외모의 이탈리안 아가씨를 만났다.
이탈리안 아가씨가 한국어로 먼저 인사를 건네온다.
"안녕하세요? 한국인이에요?"
한 두 번 경험하는 건 아니지만, 외국인이 짧은 한국어를 건네오면 언제나 반갑고 웃음이 절로 난다. 한국을 너무 좋아한다는 그녀는 '연세대 어학당'에 공부하러 한국에 방문할 구체적인 목표가 있고, BTS 뷔의 빅팬이며, 떡볶이를 좋아한단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떡볶이'라 대답하니, 본인도 너무 좋아한단다. 신당동 떡볶이 타운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잘 지내요?"라며 내게 안부를 묻는다.
한국어를 잘하네요. 어떻게 공부했어요? 물으니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공부했단다. <이태원 클래스>를 좋아한다길래 <더 글로리>를 추천했더니, 이미 봤다고 한다. 시즌 2가 나왔다고 알려주니, 오늘밤부터 볼 기세다.
사진을 올려도되냐 물으니 흔쾌히 허락했다.
해외사업을 오래 한 남편은 2006년부터 해외출장을 수없이 다녔지만, 단 한 번도 한국어로 말을 걸어오고, 한국 드라마를 봤다고 자랑하는 외국인을 본 적 없었단다.
세계여행을 시작한 2022년 6월 이후부터 지금까지 시드니 페리에서, 공항 짐 검사하는 직원에게서, 엔터로프 캐년에서, 라바트의 카사바에서, 카사블랑카에서..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한국 문화를 경험했고, 한국에서 온 여행자인 우리에게 즐거운 표정으로 본인들의 K-culture에 대한 경험을 나눈다.
한국 드라마와 웹툰, K-pop이 전 세계를 물들이고 있다. 뉴스나 매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세계여행을 하며 K-culture의 힘을 실감하는 중이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마디라도 대화하길 원하고, 무언가 나누고 싶어 한다.
문화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대한민국이 세계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오고 있다. 대한민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대단한 일을 하고 있으며, 이 시대의 영웅이라 말하고 싶다. 덕분에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고, 세계 각국에서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환대받고 있다.
카이로 한식당에서 만난 반가운 떡볶이.
외식을 사랑하는 이의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K-culture를 필두로 한국음식도 전 세계에 퍼져 나가는 것이다. 스시 레스토랑 대신 김밥 전문점을, 중국 레스토랑 대신 한국 라면과 매콤한 떡볶이 식당을 손쉽게 만나게 되는 그날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