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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어른 Dec 17. 2023

나이아가라에서 3일

함께 있어 소중한 시간, 캐나다 온타리오주 나이아가라

자연이 만들어낸 걸작을 바라볼 수 있는 풍족한 삶은 인생에 대한 가치관마저도 변하게 한다. 대자연 속 한낱 미물임에도 아등바등 살며, 하찮은 일에 매몰된 뇌를 각성시켜 준달까? 그저 나이아가라 폭포 앞에 있어본다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 드디어 J오빠 가족과 3일 간 나이아가라 폭포 여정이 시작된다.


토론토 유니온역에서 기차로 2시간 남짓 달리니, 나이아가라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렌터카를 빌려서 나이아가라로 이동하는 길에도 호선생은 언제쯤 폭포를 볼까 연신 두리번거리며 작은 눈을 부릅뜬다. 이미 여러 번 와본 J의 가이드를 받으며 편안하다. 시온 리아 남매도 4번째 방문이란다. 꼬마들의 관심은 새로운 멤버인 정우와의 놀이 그리고 오후에 방문할 게임센터다. 어른들은 나이아가라를 빙자한 그윽한 밤의 술자리를 더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령 첫번째 폭포


왼편으로 나이아가라 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폭포 보자마자 엄청 놀랄 줄 알았는데... 별로 반응을 안 보이네?? 왠지 섭섭한 걸..."

 J는 내심 우리가 크게 감동받을 거라 기대한 모양이다. 나이아가라는 2개의 폭포로 이뤄지는데, 미국령의 첫 번째 폭포를 보고는 기대가 너무 컸는지 '아.. 저 정도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진정한 하이라이트를 보지 못했던 거다. 저 멀리 또 다른 폭포가 눈앞에 펼쳐진다. 에머럴드 빛의 수색이며 폭포의 폭과 깊이가 첫 번째 것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장엄하다. 평평한 강에서 수직낙하하는 물에 시선이 머문다. 온몸에 전율을 느낀다. 얼굴을 찡그리며 입술을 깨문다. 마치 내가 떠내려가는 듯 한 공포가 엄습한다. 칼바람이 부는 한가운데서 폭포의 수온을 상상한다. 차갑다 못해 시린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특히 평지와 수직낙하지점이 교차하는 폭포의 끝자락 앞에서 굳어버렸다.


"우와~~~!!!!"

수천 km를 흐르며 낙하하는 그 앞에 서서 몇 시간이라도 볼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이다.




사실 첫날의 나이아가라의 기억은 물보라가 전부다. 거센 바람에 폭포가 만들어내는 물보라는 장대비로 착각할 만큼 강력했다. 몇 분만에 온몸이 젖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바람까지 더해져, 더 이상 걷다가는 홀딱 젖어 감기 걸리기 쉽다. 캐나다의 추운 날씨에 완벽적응한 J조차도 이건 좀 심하다며 혀를 내두른다. 이제 겨우 감기에서 벗어난 꼬마들에게 다시 감기란 안될 말이다.   


밤의 나이아가라는 또 다르다. 인간이 만든 기술로 색을 입힌다. 각양각색의 조명과 광선이 폭포를 아름답게 수놓는다. 잽싸게 뛰어가 붉게 물든 나이아가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황금빛이 감도는 빨간 폭포수는 인공미가 가미됐다 해도, 그 아름다움에 매료될 수밖에 없다. 겨울의 찬 공기가 운치를 더한다.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으로 위락시설이 형성돼 있다. 카지노부터 pub과 수많은 레스토랑, 그리고 꼬마들이 그리도 기다렸던 게임센터가 즐비하다. '나이아가라를 생각하면 주변에 숲이나 나무만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캐나다 최고 관광 자원인데, 관광지 조성이 당연하겠지...' 상업화되었다고 그 가치가 퇴색될 순 없다. 있는 힘껏 즐기고, 자연이 주는 에너지를 받아가자며 다짐한다.


처음 경험해보는 게임센터에서 넋이 나간 정우.


밤이 깊고, 아이들 모두 잠들었다. 10년 만에 만난 술자리가 시작됐다. 다들 이 시간만을 고대했을 거다. J의 캐나다 이민 후 이야기를 들었다. 그저 즐겁기만 하던 20대의 대화 주제와 무게가 확연히 달라졌다. 잊을만하면 육아 이야기가 시작된다. 20대 초반 풋풋한 나이에 만났던 우리 모두 부모가 되었고, 40대가 되었다. 그 중후함이 주는 술맛과 분위기는 젊은 혈기 가득했던 술자리와 다르지만, 10년 전 기억이 며칠 전 일처럼 생생하기에, 새벽 늦도록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만나서 어색해하면 어쩌나 싶던 남편도 내가 좋아하는 J오빠, Y언니와 금세 친해졌다.


캐나다에서는 <LCBO>라는 주류판매점에서만 술을 판다. 맥덕후 홍어른을 위해 J가 골라준 맛있는 맥주들.. ^^
온타리오주에서 생산한 와인들까지 합세하여 근사한 시간, 치얼스!


다음날엔 폭포 아래로 들어가는 체험을 했다. 여름이라면 폭포 아래까지 접근하는 보트를 탈 수도 있지만, 11월의 추운 날씨에 아이들까지 함께라면 상상하기도 싫다. 폭포 아래를 통과하는 터널에서 낙하하는 물줄기를 바로 앞에서 보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폭포 주위로 무지개까지 빛나며, 축복받는 기분.
대관람차에서 본 나이아가라


꼬마들을 위해 게임센터를 충분히 즐기고, 나이아가라 온 더레이크 인근을 여행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교회에도 방문하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머물렀다는 <prince of wales hotel>이 있는 고풍스러운 마을도 구경했다. 온타리오주의 와이너리에 들러 다양한 와인 시음도 하고, 캐나다의 명물 아이스와인도 샀다. 모든 순간이 즐거웠던 3일간의 나이아가라 여정을 마치고 토론토로 돌아왔다. 토론토에서도 남은 일정 내내 매일 만나며, 함께 있는 순간을 만끽했다. 다정한 J오빠와 세심하게 배려해 주신 Y언니, 귀엽고 사랑스러운 리아, 시온이까지.. 글을 쓰는 지금도 너무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책 제목처럼...

우리는 반드시 다시 만나.








[아래는 남편의 일기 발췌]

토론토를 떠나며

새로운 누군가와 인연을 맺으며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공유한다는 건 삶의 또 다른 이유다. 혼자만 살 수 없는 인생이기에 심적, 물질적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쉽지만은 않은 500일 여정에서 때로 단출한 셋이서는 외로울 때도 있었다. 그래서 J가족과의 이번 만남이 더 값지다. 토론토 어디를 가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토론토는 다른 여정과는 분명 다르다. 어딜 가고 경험하는 게 아닌 '함께 있었음'으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그 기억은 오래갈 것이다. 어쩌면 조만간 다시 만날지도 모른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먹기에 따라 가능할 수 있다는 것. 자유여정이 주는 최고의 가치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삶 전부 그렇게 자유롭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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