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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어른 Nov 16. 2023

10년 만의 해후, 불청객 감기와 제주 아가씨

+139, 캐나다 토론토 한인민박에서 

10년 만의 해후

세계여행 일정을 계획하는 데는 여러 가지 목적과 이유가 있지만, 토론토에 가는 이유는 나의 지인을 만나는 목적 단 하나다. 20대를 함께 울고 웃었던 의남매 Jacob 오빠(이하 J)가 캐나다로 이민 간 지 10년째지만, 사는 게 바빠 그간 만나지 못했다. 그저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J와 메시지 주고받는 내내 들떠있는 나를 보며, 혹시 남편의 기분이 상하진 않을까 걱정이다.


"오빠, 미안하지만 내가 다른 남자 만나는데 너무 설레어도 기분 나빠하지 마~"

남편은 태어날 때부터 너그러운 사람이다.

"그래, 만나면 한 번 꼭 안아줘~"


공항으로 마중 나온 J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다정하다. 뜨겁고 긴 포옹으로 해후하고, J의 폭스바겐에 몸을 싣는다. 와이프 Y언니가 준비해 준 따뜻한 패딩을 입고 토론토 시내 구경에 나선다. 오전 비행으로 피곤한 몸을 뜨끈한 쌀국수로 데우며 그간의 안부를 묻는다.  


10년만에 만나는 J오빠, 인공호수 앞 모래 놀이장에서.. 


[남편의 일기]

참 오랜만에 누려보는 편안함이다. 늘 운전석에 있던 내가 조수석에 앉아있다. 늘 함께하던 배낭도 없이 가볍다. 무엇을 하고 어디를 가야 할지 정할 필요 없이, J에게 모든 걸 맡긴다. 토론토의 11월은 꽤 쌀쌀하다. 따뜻한 나라에서 수개월을 보낸 우리에겐 침으로 온몸을 찌르는 듯 따끔따끔한 추위다.


J는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가 어울릴 법한 긴 수염을 기르고 있다. 중후한 목소리에 뮤지컬 배우 남경주를 닮았다. 현재 캐나다에 진출한 한국 대기업에서 근무 중인데 이민온 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타국에서 정착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의 아내 Y는 한국 메이저 언론사 기자 출신에 미인이다. 이정이처럼 외모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진정한 결혼상대자를 찾은 현명한 여성이다. 만나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나이아가라로 가는 센트럴 기차역, 에펠탑이 생기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타워였던 CN타워
J오빠 부부가 준비해준 패딩을 입고 다운타운 구경에 나섰다. 


[홍어른]

매서운 추위에 한 시간 이상 걸으며 토론토 다운타운을 구경하고, 한인타운에서 뜨끈한 부대찌개로 저녁식사를 했다. 숙소로 들어온 정우가 피곤한지 힘없이 누워있다.

"오빠, 정우 숨소리가 달라졌어, 아무래도 감기 걸린 것 같아."

목이 따끔한 지 마른침을 삼키며 코를 훌쩍거린다. 캐나다 전역에 어린이 독감 대유행이라 감기약을 구하기 힘들다는 Y언니 부탁에 미국에서 어린이 감기약을 사다 주었는데,,, 위기의식이 결여된 엄마 아빠의 고질적인 불감증이 다시 도졌다. 뉴욕에서 매일 2만 보 이상 걷는 강행군 이후 보스턴으로, 토론토로 이동하며 버스와 비행기 시간으로 며칠 째 새벽 6시 반에 일어났다. 아이의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고, 추운 날씨에 다운타운 구경한다며 돌아다녔다. 언제까지 사단이 벌어지고 나서야 후회하는 걸까? 정우가 아무리 튼튼해도 경계를 넘어서면 탈이 날 수밖에... 더러운 손으로 코를 파던 아이에게도 책임이 있다. 생각해 보면 이미 그때 감기에 걸렸던 게다. 간지러우니 계속 코를 만졌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왜 자꾸 코를 파냐며 핀잔을 줬다. 정우가 많이 피곤할 텐데,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한다. 힘껏 이불을 걷어차며, 짜증 섞인 울음을 터트린다.

토론토 여정의 하이라이트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떠나는 2박 3일이다. J 오빠 부부가 기차표와 호텔을 전부 예약해 두었다. 두 조카들도 지난 2주간 독감으로 고생했다는데, 정우의 감기가 다시 옮기진 않을까... 3일 뒤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기로 했다. 이번 기회에 재충전하며 푹 쉬자. 



고된 일정으로 지친 꼬마, 공동주방 숙소에서 집콕해도 그저 즐거운 어린이. 




제주도 자매.

정우가 여전히 미열이다. 밤새 울고 뒤척이며 엄마를 찾기에 이틀째 잠을 설치고 있다. Covid 이후 시작한 여정이라 어린 아들을 고려 단독 숙소를 고집했지만, 토론토에서는 Y언니가 알려준 한인민박에 머물기로 했다. 하루 100 캐나다 달러로 저렴하지만, 싱글 침대 2개, 작은 옷장에 꽉 찰 정도로 좁다. 아이의 소음이 민폐가 되진 않을까 부담도 있다. 이제껏 단독숙소를 고집한 덕분에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냈으리라..  


간단히 목례만 하던 옆 방의 두 아가씨와 주방에서 식사 준비하던 중 가볍게 대화를 건넸다.  

"간단하게 김치찌개랑 볶음밥 만들고 있는데, 괜찮으면 같이 먹을래요?"

"아 정말요? 저희도 먹어도 돼요? 너무 좋아요~"

그녀들은 우리의 두 눈을 크게 만들었다.  

"저희는 자매예요. 제주도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까지 제주에서 살았어요." 


제주도라니!!!!!!

세계여행 이전의 제주 한 달살이 경험과 500일 여정 이후 제주도 정착을 고민 중이라는 등,, 쉬지 않고 이야기보따리를 푼다. 집콕하느라 답답하던 중에, 제주도 자매가 술을 좋아한다는 말이 그저 반가울 따름.  

"혹시 오늘 언제 들어와요? 같이 한 잔 할래요? 제주도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 

그녀들도 입을 모아 "네~ 너무 좋아요~"


중어 중문을 전공한 자매 중 언니는 명문대 중문대학원을 잠시 휴학하고, 캐나다 취업비자를 받아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앞으로 1년간 머무를 집을 알아보기 전 잠시 한인민박에 머무는데, 이렇게 인연이 되었다. 

"하.. 아직 29살 이라니.. 너무 부럽다. 부러워. 정말 예쁜 나이예요."


웃음 많고, 미소가 예쁜, 착한 아가씨들이다. 제주에서 자연을 벗 삼으며 자랐기에 심성도 착할 거라며, 

"정우도 저렇게 티끌 없이 깨끗한 심성을 가지면 좋겠다. 그러려면 제주도에서 살아야지."라는 남편의 말에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해외로 일하러 간다는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실행에 옮기는 건 쉽지않은 일이다. 용기 있는 그녀들의 앞 날에 축복을 빈다. 


수없이 많은 와인과 맥주를 비워내며 도란도란한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던 밤이다.  


예쁘고 사랑스럽던 제주도 아가씨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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