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안 마셨지만) 해장하기 딱 좋은 튀르키예 음식이 있다면 단연코 튀르키예의 국물, 초르바(Çorba)다.
튀르키예의 겨울은 한국 겨울보다 춥지 않다. 하지만 여행자는 컨디션과 기분에 따라 이가 덜덜 떨리는 깊은 추위를 느끼기도 한다. 튀르키예의 긴 배낭여행은 겨울이 끝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2월이었지만, 여전히 겨울의 기운이 기승을 부린다. 짐을 줄이기 위해 두꺼운 옷을 많이 가져가지 않았기에, 춥고 배고픈 내 HP 게이지를 채워주던 뜻밖의 빨강 포션은 화려한 케밥도 괴프테도 아닌 동네 어귀, 허름한 가게의 따끈한 초르바다.
2월의 셀축(Selçuk)에서 8시간째 걷고 있던 나는, 그야말로 꽁꽁 얼어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게스트하우스가 있던 동네 어귀 어느 식당에 쑥 들어가 초르바부터 주문한다. 양고기가 듬뿍 담긴, 그리고 고기 기름이 진득해 보이는 양고기 초르바가 나온다. 이미 내 손엔 무의식적으로 식탁마다 그득히 담겨 있던 빵바구니에서 꺼낸 말랑한 빵 한 조각이 쥐어져 있다. 빵을 모조리 초토화 낼 사기와 기세가 무의식적으로 장착된다. 준비는 끝났다. 암 레뒤~!
셀축(Selçuk)의 양고기 초르바. 꽁꽁 언 몸을 녹이고 속을 푸는데 제격.
겉바속촉 튀르키예 빵을 주먹만큼 찢어 양고기 초르바 국물에 푹 찍은 후 오물오물 씹어본다. 간이 잘 된 고기 국물이 빵에 흠뻑 스며들어 탄수화물과 절묘한 조합을 이뤄 입 안에선 작은 향연이 펼쳐진다. 허기짐과 추위가 가시기 시작이다. 이번에는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어본다. 양고기를 삶았을 때 나는 특유의 맛과 향이 진하게 느껴지고 토마토와 양파의 맛도 곧 따라온다.
양고기는 푹 오래 고아 식감이 부들부들하다. 양기름이 살짝 붙어있는 고기 부위가 더 내 취향이다. 새 빵을 다시 집어 반을 가르고 부들부들한 양고기 서너 점을 빵 사이에 끼운 후 국물을 약간 뿌려 빵 안쪽을 촉촉하게 만든 샌드위치 타입으로도 맛본다. 다 맛있다.
그다음부터는 두말 않고 코 박고 먹는 중.
곧 추운 기운이 싹 가시면서, 노곤노곤해지기 시작한다.
(꼭 술을 마셔야 속이 풀리는 건 아니지만) 튀르키예 초르바는 언 몸을 녹이고, 허기를 달래고, 마음을 토닥거리는 훌륭한 소울푸드다. 꺼억~
튀르키예의 초르바는 국과 같은 형태도 있지만, 수프처럼 만들어 먹기도 한다.
트라브존(Trabzon)의 렌틸콩 초르바. 다른 메인 음식을 시키지 않아도 초르바에 튀르키예 빵이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