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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총총 May 21. 2023

[이런, 이란!] 하마단 고대유적 톺아보기 1

페르시아 솔로 방랑기

구약성서에도 언급된 고대도시 하마단을 톺아보다 1


이란 서부도시 하마단(Hamedan)은 오래되고 유서 깊은 도시였기에, 고대의 면적 개념으로는 엄청나게 큰 도시였겠지만, 지금의 개념으로서는 그다지 크지 않아서 스팟과 스팟 사이가 내 걸음 기준, 45분 정도 걸으면 도달하는 거리다. 하마단은 구약성서에도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된 도시로 세계 최고(最古) 도시 중 하나다.


한국에선 운동은커녕 잘 걸어 다니지도 않다가 여행할 땐 하루에 8시간 이상씩 걸어 다니게 된다. 변태인가 보다. 하마단도 그 정도 걸을만한 거리에 멋진 유적지들이 널려 있어 온종일 걷기로 한다.


누신씨가 차려준 이란식 멋진 조식. 샐러드, 달걀, 페타치즈, 빵 혹은 비스켁, 버터 등이 기본 조식 차림이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호스텔 주인 누신(Nooshin)이 멋진 조식을 차려놓았다. 이란 호스텔은 웬만하면 조식이 포함된다. 누신이 직접 꾸몄다는 식당은 아기자기한 게 참 예쁘다. 벽화도 직접 그렸단다.


나는 카페인 중독자에 커피 덕후인데 여기저기 여행을 다녀보니 내 입맛에 맞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중동 커피는 튀르키예식 머드커피 혹은 아라비아식 민트 커피가 전부고, 중국에서도 오히려 차를 마시는 문화라 커피가 있긴 있지만 그다지 맛이 없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오만(Oman) 출발부터 아예 드립커피 일체 도구를 가지고 왔다. 그라인더와 텀블러, 휴대용 포트가 그것이다. 좀 미친 짓 같지만... 그런대로 만족.


한국에서부터 바리바리 싸 짊어지고 간 내 커피 용품. 얘네들 덕분이 캐리어 1/3이 커피용품이었던 듯.


내가 드립커피 내리려고 커피 홀빈을 그라인더로 드륵드륵 가니까 누신이 깜짝 놀란다. 나 같은 녀석을 처음 봤다며. ㅋ 하긴... 나도 내가 좀 극성인 건 인정한다.


11월의 하마단엔 멀리 설산이 보인다. 하마단은 도시 한 면이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도시다.


헤그마타네 유적지


헤그마타네 유적지(Cultural Heritage and Tourism Base of Hegmataneh)는 2천 년이 넘은 유적지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유적지다. 헤그마타네는 기원전 1세기 경 메디아(Media) 왕국의 수도였고, 이후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왕조의 수도이기도 했다.

그냥 수도이기만 한게 아니었다. 셀레우코스 왕조, 파르티아, 사산조 페르시아, 이슬람의 각 왕조 시대에도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매우 유명한 도시 중 하나였다.



헤그마타네 유적은 기원전 17세기 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역사가 헤로도토스도 이 헤그마타네를 언급했다. 언덕을 이용하여 세운 것이 특징인데, 발굴을 하는 건지 공사를 하는 건지 뭔가 뚱땅거릴 뿐, 제대로 된 설명도 유적지 보존도 영 아니올시다. ㅠㅠ


도시 규모를 추측해 보건대, 아직 발굴이 다 끝난 상태가 아니라고 해도, 관람하기가 영 불편하다. 하지만 유적지를 돌아다니다가 또 기묘한 기분에 빠진다. 전공 때문에 고고학 발굴 경험이 있고, 여러 유적지의 복원 형태도 공부해 본 바, 이런 고대 유적지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으면, 마치 CG처럼 당시의 북적거리던 도시가 머릿속에서 복원되어 오버랩되기 일쑤다. 오랜 학문병(일종의 직업병?)이다.


발굴현장은 별로지만, 유적지 바로 옆에 헤그마타네 박물관(Museum Hegmataneh)은 꽤 볼만하다. 이 박물관에는 헤그마타네에서 발굴된 여러 유물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전시가 잘되어 있고, 유물도 참 괜찮다.

하긴 워낙 역사가 긴 나라니 땅만 파도 이런 엄청난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을 거다. 박물관 덕후로서는 눈이 돌아갈 만한 곳임에 틀림없다.


박물관은 작지만 메디아, 아케메네스, 파르티아, 사산조, 셀축, 이슬람시대까지 하마단의 출토품들을 짜임새 있게 전시해 놔서 너무 좋다.


매장지를 재현해 놨는데 해골이 두 분이 사이좋게 누워계신다. 좀 다정해 보이는 걸 봐서 가족이었던 듯. (아님 순장인가? ;;;;)


초기 이슬람 캘리그래피인 쿠픽체로 장식된 접시. 박물관 학예사 시절 정말 징그럽게 많이 봤던 문양인데, 여기서 다시 보니 반갑네? ㅎ


헤그마타네에서 출토된 히브리어 토라(유대교 경전)인데 여기가 얘가 제일 압권이다. 출애굽기가 기록된 2천 년 넘은 유물이지만, 복원을 너무 잘해놔서 어제 잡은 소래도 믿을 지경.


아케메네스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와 크세르크세스 대왕의 업적을 쐐기문자로 새긴 석판. 크기가 어마어마해서 한 샷에 안 잡힌다.



이란에도 교회가 있긴 하다


정식 이름은 스테판 그레고리 교회로 헤그마타네 유적 바로 옆에 있다. 설명판을 보니 'evangelical'이란 단어가 보인다. 서기 1676년에 이스파한의 많은 아르메니아인들과 이 지역으로 이주한 이민자들, 그리고 하마단에 거주한 러시아의 아르메니아 상인들에 의해 세워진 교회다.


사실 지금은 교회로 사용되지는 않고 그냥 관광지일 뿐이지만, 이란에도 교회가 있긴 하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교회, 성당, 절, 사원을 보면 들어가서 구경도 하고, 다리 쭉 뻗고 앉아 쉬고 오는 이상한 여행자다. 종교 시설에 들어가 있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고 영성이 충만해지는 너낌적인 너낌. 게임으로 치면 MP 충전 같은 거?


벽돌로 만들어진 스테판 그레고리 교회는 폐허 직전 1932년에 재건되었다. 아르메이아인들에 의해 세워져 그런지 아르메니아 정교회 건물 양식이다.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걸 보니 교회의 기능을 하긴 하나 보다 싶다. 교회에서 MP충전과 핸드폰 충전을 동시에 한다. ㅎ


아라베스크 부조가 미쳤다


하마단의 중요한 건축물 중 하나인 알라비얀 돔(Alaviyan Dome)은 12세기의 영묘다. 알라비 가문이 모스크로 만들었다가 영묘로 썼단다. 영묘는 이슬람식 가족 단체 무덤으로, 실제로 알라비 가문의 사람들이 지하에 묻혀 있다.


원래는 지붕에 돔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알라비얀 영묘


조각이 정말 미쳤던 알라비얀 돔. 오랜 세월로 색깔이 저런 색이고 조각이 너무 섬세해 석조가 아니라 목조 건물 같다.


미흐랍(이슬람에서 기도 방향을 나타내는 구조물) 상단 부분 조각. 영묘지만 초기 용도를 모스크로 지어서 미흐랍의 흔적이 존재한다.


조각으로 빈틈이 없던 기둥조각. 그렇지만 빈틈은 대충대충 복원 ㅡ,.ㅡ


영묘 옆, 작은 박물관의 스테인드 글라스.


영묘 옆 박물관에 있던 문고리 장식. 이슬람에서는 여자용, 남자용 노크 문고리가 따로 있다. 어떤 게 남자용인지는 상상에 맡기겠다.(생각하시는 거 그게 맞을 듯;;;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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