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한 로망

happily ever after?

by hongdan

결혼을 앞둔 사람들에게 청첩장을 받을 때마다 물었다.

"이 사람이랑 결혼을 해야겠다는 확신의 순간이 있어요?"


몇 명에게 물어봤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거의 대부분 '그렇다'라고 대답해줬다.


스무 살부터 스물여섯, 일곱 그 언저리까지 나는 그 '확신'이 늘 궁금했다. 모두가 그런 확신을 가지고 결혼에 뛰어드는 건지 아니면 적당히 오랜 기간 사귀고 때가 되었다 싶어 결혼을 하게 되는 건지. 어른들이 말하는 '혼기가 찼다'는 말에 지금이 아니면 안 되겠다 싶어 후다닥 해치우는 결혼이라면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스물 다섯 때 다시 만난 첫사랑과 약 일 년 반 정도를 연애하다 드디어 그들이 내게 대답해줬던 '확신'을 찾았다. 어쩌면 그 확신은 같은 시간을 보내며 둘 사이에 서서히 생겨나는 신뢰의 종류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느 날의 대화 속에 번개처럼 내리 꽂힌 순간적인 한마디의 말이 확신이 되었다. '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같이 살아도 좋겠다' 아하, 이런 거였구나.


누구나 자신의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다. 평생을 선머슴처럼 씩씩하게 살았던 나조차도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순간이나 내 손으로 꾸미는 내 스타일의 집 인테리어, 자유로운 신혼여행과 합법적인 독립에 대한 꿈이 있었다. 무엇보다 연애기간 싸움이 거의 없었던 남자 친구와 친구처럼 소꿉놀이하듯 여보 당신 부르며 한 집 아래 꽁냥 거리는 순간도 간절했다.


그 결과 나의 결혼은 앞자리 숫자가 3으로 바뀌기 전, 한 살이라도 젊고 어리고 피부가 백옥 같았던 스물아홉에 번갯불 콩 구워 먹듯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꿈꾸던 로망이 현실이 됐는데 돌이켜보니 별거 없다. 웨딩드레스나 신혼여행이나 다시없을 순간들은 맞지만 순간 지나가는 이벤트일 뿐이고 같이 한 집 아래 사는 순간부터가 진짜 현실이라는 것.


결혼생활은 연애 때만큼 달달하고 알콩달콩하지만은 않았다. 연애 때 거의 싸우는 일이 없었던 우리는 분리수거를 왼쪽에 하네, 오른쪽에 하네 하는 걸로 투닥거리고 한 이불을 덮고 자다가 매일 새벽에 쟁탈전이 벌어져 이불을 따로 쓰고 있으며 치약을 가운데부터 짰다고 빈정이 상하는 '현실 조정기간'을 만났다. 다행히 현실 조정기간은 약 6개월 정도 걸렸다.


대화가 싸움이 될 것 같으면 우리는 카페로 나갔다. 우선은 옷을 입고 나가는 시간 동안 상황을 되짚어 볼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카페에서 마주 앉아 음료를 마시면 싸움이 아니라 토론을 할 수 있었다. 집에서 1분 거리에 있던 카페는 위치도, 분위기도 아주 훌륭했다. 싸움을 토론으로 바꿔서 원하는 바를 서로 양보하거나 얻어내는 건 어느 부부에게든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렇게 몇 년 경험하니 나도 남들이 다 하는 그 흔한 농담을 던지는 아줌마가 되었다.

'결혼과 죽음은 최대한 늦춰라'


고부갈등도 없고 시어머니 앞에서 편식하는 음식을 나열해 좋아하는 것만 당당히 골라먹을 수 있게 된 며느리의 입에서 굳이 결혼을 죽음처럼 늦추라는 소리가 웬말이냐마는, 글쎄? 어차피 할 거라면 조금 늦게 해도 상관없지 않았을까? 적어도 내가 경험한 건 그랬는데.


결혼 좋지. 좋아. 좋은데 온전히 '나'로 살 수 있는 자유는 분명히 줄어든다. 나 혼자 여행, 나 혼자 취미 생활, 나의 TV 시청권, 나의 시간. 그것들은 우리의 여행, 우리의 취미 생활, 우리의 시간들로 바뀐다.


아주 쉬운 말로 예를 들자면 결혼 전 명절은 내게 장기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아주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이었다면 결혼 후 명절은 가족과 함께하는 '새로운 식구'로 인사드리는 시간이 된다는 정도?


그러나 뭐라고 끄적대든 나는 이미 아줌마가 되어있는걸.

드라마를 보며 콧방귀나 뀌고 '그럴 거 같지?'라는 반박을 해대는 모습을 보며 남편이 말했다.

"아줌마 다 됐네."


아 그럼. 결혼했으면 아줌마지 뭐. 반박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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