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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May 03. 2019

나는 간호사를 꿈꾸기로 했다

졸업 후 취업 실패로 결국 다시 대학에 들어가게 된 사연

    중학교 시절 입시위주에 대한 고민으로 고등학교를 대안학교로 진학했다. 앞의 문장 한 줄이 참 단조롭게 설명되어도 되나 싶지만, 폭풍 같이 지나간 그 시간들을 요약하면 저 한 줄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중학교 시절 나는 입시위주의 공부가 너무나도 버거웠다. 평가되는 삶은 우정을 갈라놓고 의심하게 만들었다. 세상은 서로 돕고 상생하는 모습을 지향하면서도, 학교에서 만큼은 서로 돕고 상생하는 모습지양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의 힘으로 '이해되지 않는 건 이해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고 부모님께 중학교 자퇴 선언을 하기까지 두 달 꼬박 밤을 지새웠다. 불면증을 견디지 못하고 가슴을 졸이며 부모님께 말씀드렸는데 생각지도 못한 부모님의 공감이 나를 단번에 녹였다.


    그렇게 대안학교로 진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는 중학교와는 정반대의 방향과 분위기였다. 스스로 결정하고, 결정에 대한 책임을 지어야 했다. 종종 직업체험이라는 이름 아래 다양한 직업군을 찾아가서 경험해보고 일을 도우며 진로를 찾아갔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고 찾아나갔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고 나는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 사회복지학과로 진학했다. 

    내가 생각한 대학의 모습과는 달랐지만 그래도 내가 선택한 길이니 성실히 임했다. 그리고 사회학을 복수 전공하게 되면서 사회를 깊이 있게 고민하고 알아갔다. 사회복지를 배우며 사회학을 배우니 꼭 '꼬마 니콜라'처럼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철학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리고 졸업을 해보니 취업이 참 어려웠다. '채용 인원 0명'이거나, 암묵적인 내정자가 있는 등 "안타깝지만..."으로 시작되는 홈페이지의 공고를 몇십 번 보다 보니 알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학교 생활 성실히 하고 2번의 실습에서도 인정받았었지만 취업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1년이 되어가고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 사회복지사를 실천하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생활이 퍽퍽해져 위로를 받으러 본가로 내려가면 엄마와 아빠가 참 대단해 보였다.  반찬을 만들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소파에 누워 보고 있자니 엄마에 대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엄마는 노동강도가 세다고 유명한 간호사이고, 지금보다 더욱 성차별이 심했을 시절 대학(간호 대학)을 졸업했다. 그 후로 간호사라는 전문인으로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엄마가 지금 나이에도 일을 할 수 있는 건 간호사라는 전문직업인의 특성이 분명 있을 것이다. 직업 자체가 있고 그 직업을 유지할 수 있는 엄마를 부러워하며 다시 서울로 올라왔고 나는 그 후로도 계속 취업에 실패했다.

    고용쇼크라 했던가. 정말 취업이 어려웠다. 손을 떨며 지원을 했고 울었다가 체념했다가 술로 기분을 달랬다가 애써 괜찮은 척 웃었다. 그런 생활을 반복하던 중 엄마가 '너 다시 공부해 볼 생각 없니?'라며 전화가 왔다. '무슨 공부?'라고 묻자, '엄마가 계속 생각해봤는데, 엄마는 간호사라는 직업을 사랑하고 있고, 간호 공부를 한 번 배워두면 당장 취업을 안 하더라도 나중에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사회복지 대학을 4년 다니고 또 간호 대학을 4년 다닐 생각을 하니 아찔했다. 한두 달을 고민하다가 취업이 안되어, 졸업 1년 만에 다시 간호대학에 재입학했다. 3년 연애하던 애인과는 단번에 장거리 연애가 되었다.


    취업이 안되어 다시 입학한 것인 만큼  '공부가 힘들더라도 취업은 되니까'라는 마음에 애써 웃는다. 고등학교 시절 꿈꿔왔던 '이타적인 삶'을 실현할 수 있을까. 간호사 면허증을 취득하여 병원에서 버티며 사람을 도우며 살 수 있을까. 아직 1학년 1학기지만 다시 공부를 시작한 만큼 많은 생각과 고민이 든다.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을 숨기며 괜찮은 척한다. 나 잘할 수 있을까.


    20살의 나는 사회복지사 되기로 다짐했는데, 5 후 나는 간호사를 꿈꾸기로 했다. 직업이 바뀔지언정 내가 지향하는 '이타적인 삶'의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 앞으로 간호학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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