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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May 07. 2019

'자신도 당했다'는 명분은 이제 그만

간호학과 입학 후, 오리엔테이션 때 있었던 일

    근래에 들어 뉴스나 sns에서 간호사 태움 문화를 통해 권위적인 면모를 살펴볼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간호학과에 다시 입학하기로 결정을 하고 나서도 끊임없이 걱정을 했다. ‘태움 문화를 버틸 재간이 있을까’하고 말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유지된 간호사 문화이고, 사회는 서서히 변화하고 있지만 당장 2~3년 안에 동전 뒤집듯 바뀌지 않을 것 같아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렇게 어느덧 2월 마지막 주가 되고, 나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갔다. 다른 학교 오리엔테이션과 달리 반나절 만에 끝난다고 했다. 학교에 도착하여 강당을 둘러보니 생각보다 간호사가 되길 희망하는 젊은 청년들이 많았다. 처음 만난 사람과 서먹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절반, sns에서 이미 만나 삼삼오오 모여 앉은 사람이 절반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교수님께서 오리엔테이션 시작을 알렸다.        

    이미 많은 뉴스와 sns에서 태움 문화에 대해 조사를 하고 학교에 온 탓일까. 모든 것이 강직된 자세로 보이고 경직된 목소리로 들렸다. 교수진의 소개와 학사 일정을 들으며, ‘내가 색안경이 끼인 것’, ‘내가 예민한 것’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차저차 전반적인 소개가 끝나자 드디어 학생회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간호학과는 우리 대학 중 가장 명성이 높은 학과이고,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들어올 수 있다고 소문 나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학과는 인성 또한 높게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에 들어온 이상 교수님들과 선배님들께 반드시 ‘안녕하십니까’로 인사를 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신입생들은 조용했다. 그러자 다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했는데, 왜 인사를 안 하십니까. 이런 식으로 하면 제대로 할 때까지 집에 못 갑니다. 안녕하십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1~2초 후 ‘안녕하십니까’라고 하는 신입생들이 몇몇 있었고, 목소리 크기가 마음에 들지 않은 학생회장은 “안녕하십니까.”를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그렇게 군기가 시작되었다. 작은 사회인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그것도 오리엔테이션 때 1~2살 차이 나는 학생 간의 군기 잡는 문화의 시작을 목격하게 된 순간이었다. 인사를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라, 신입생을 강당에 모아 놓고 인사 ‘연습’을 시키는 것이 위계질서를 견고화 시킨다고 생각했다.  

    개강 이후 1, 2학년 합동 세미나 수업 시작 전이나 끝날 때, 그리고 MT를 한다고 선후배가 다 같이 모일 때 등 ‘요즘 1학년들은 목이 빳빳하다’, ‘현장에 나가서 미움받으려고 그러냐’, ‘현장에서는 인사하는 문화가 더 심하다’ 등 인사 강요를 받았다. 실습 현장에 나가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현장에서 인사 강요가 있다고 해서 똑같이 강요하는 것이 잘 된 일일까. 선배들은 인사를 안 하기 때문에 ‘앞으로 학교생활에 있어서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지 않겠다’는 으름장이 있었고, 계속해서 인사 강요를 받으니 학교에서 누구든 마주칠 때마다 ‘안녕하세요’ 라며 인사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이 생겼다.      

    인사 때문에 태움 문화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환자를 돌보느라 화장실 갈 틈과 식사를 할 틈이 없어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언제 어느 때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는 예민한 현장 그리고 강한 노동강도가 태움 문화로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내가 받은 스트레스를 나보다 약한 타인에게 푸는, 화의 화살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이 태움 문화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으로 공부량이 많고 힘 것을 이렇게 사소한 것으로 그리고 ‘자신도 당했다’는 명분으로, 자신보다 아래인 후배에게 푸는 것이다. 작은 것에 으름장을 놓고, 혼내는 듯한 말들을 나열하는 것은 강압적이고 경직된 문화를 형성하는데 일조한다.        

         

    이러한 인사 문화는 간호학과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직까지 군기가 남아 있는 대학이라면 어디든 강압적인 잔재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당했다고 해서 계속해서 지키고 이어나가기보다 불필요한 문화는 유연하게 유동적으로 바꾸어 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 앞으로 간호학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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