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할머니와 매일 기분 좋게 약속하고 내일 또 똑같은 약속을 한다
요양원 사건 이후, 곁에서 가장 많이 고생하신 둘째 삼촌은 요양원에 대한 불신이 가득해지셨다. 그냥 지금처럼 안정적인 생활을 하시는 할머니가 가장 최선이라는 생각을 굳히셨다. 막내 삼촌은 일반 회사를 다니시기에 평소 잠을 잘 때 새벽이면 깨우고, 출근 시간 때문에 새벽 5시에 일어나는 게 너무 고역이었는지 할머니가 요양원에 가 계신 4일을 잊지 못하셨다. 가족 모두가 지우지 못한 생각은 ‘조금만 더 적응기간을 주시면 되었을 것 같은데’이었다. 엄마는 둘째 삼촌의 고생과 셋째 삼촌의 힘듦을 다 이해하면서도, 멀리 살았기에 큰 의견을 내기 어려워했다. 큰삼촌은 보내도 그만, 안 보내도 그만이신 마음이신 것 같았다.
할머니가 퇴소했기에 요양원 대기 번호가 가장 마지막 순번도 다시 밀리기도 했지만, 당분간 다시 요양원에 보내지 말자는 의견이 모여 할머니는 전에 다니던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셨다. 할머니 케어는 전처럼 삼촌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맡기로 했다.
요양원 사건 한 달 후, 나는 방학을 맞이했고 장거리 연애가 힘들어 서울로 올라왔다. 삼촌들은 내가 있는 동안 할머니 케어를 잠깐 쉬기로 했다. 내가 할머니 집에 온 첫날 둘째 삼촌은 근간 있었던 일을 모두 말씀해주시며 앞으로 할머니 위주로 생활해야 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고 저녁 9시쯤 집에 들어갔다. 집에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집 전화기를 들고 전화 수신음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나 : 할머니 뭐해요?
할머니 :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나 : 공부하고 왔어요. 공부 열심히 해야 하잖아.
할머니 : 물론이지.
할머니는 내가 어린 시절부터 '여자도 공부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기에, 내가 공부했다 하니 좋아하셨다. 하지만 혼자 있는 걸 무서워한다는 건 변하지 않았는지 앞으로 일찍 오라 하셨다. '저녁은 먹으며 공부를 해야 한다'며 저녁 시간 안에는 들어오라 했다. 그 말은 할머니가 복지관에서 돌아오기 전에는 집에 들어오라는 말씀이셨다. 나는 할머니를 다른 생각으로 돌리려 다른 말을 꺼냈다.
나 : 할머니 문 안 잠가요?
할머니 : 잠가야지. 네가 왜 안 잠가.
나 : 할머니가 문 매일 잠갔잖아요.
할머니 : 너도 잠글 수 있잖아. 내가 까먹으면 네가 잠그면 되지.
나 : 할머니는 문 잠그는 담당. 나는 맛있는 거 주는 담당.
할머니 : 그래. 하나씩 맡자!
할머니의 '일찍 오라'는 말에서 벗어났다. 같은 말을 반복해서 대답을 해도 5분 안에 다시 물으시기 때문에 몇 번이고 반복할지 몰라 이런 상황이면 화제 전환을 하는 게 상책이었다. 내일도 늦게 들어오면 똑같이 반응하실걸 알기에 오늘 당장에 상황을 벗어나면 되었다. 그냥 서로 좋은 기분으로 약속하고 내일 다시 약속하면 된다. 중요한 건 할머니 기분이다. 치매 할머니와 같이 사려면, 기분 좋게 주무시고 기분 좋게 생활하실 수 있도록 잘 달래는 수밖에 없다.
*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20대 손녀와의 동거 이야기가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