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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Sep 18. 2015

변화의 달

두렵지만, 기꺼이 한걸음

아이가 태어난 4월이 오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깊게 공기를 들이마시고 하늘을 보며 아이와 닮은 날씨안에서 사는 게 행복하다 느낀다.

9월이 오면 또 9월 만의 바람이 분다.

훅 불어오는 바람엔 아직 여름 햇살이 담겨있지만,

그 속에 한결 두결 청량한 바람이 숨어 곧 있을 계절을 예고한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장을 향해 나설 때 훅 불어왔던 그 바람의 느낌과 꼭 같다.

그 해 9월 나는 결혼을 했다. 내 인생에 수 많은 선택이 있었지만 결혼만큼 완벽히 내 삶을 변화시킨 것은 또 없다.

그때 나는 그 변화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직감했기에 남편이 미리 들어가 있는 신혼집에 툭하면 들러

어서 빨리 9월이 오기를, 우리가 한집에 살기를 고대했다.

4년이 지나 네 번째 9월이 또다시 우리에게 왔다.

안정적인 생활과 그간 견고하게 쌓아 올린 우리 가정에

찬기운을 담은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9월 1일 자로 남편은 새로운 팀으로 발령이 났다.

부서이동이라는 게 어찌 보면 회사 안에서 일상적인 일처럼 보일 수 있지만 -

10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며 두 번의 부서이동을 통해 내가 느꼈던 기분은 썩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전 팀에서 나를 완전히 독립시키는 과정은 그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좋을수록 쉽지 않았으며

새로 발령받은 부서가 아무리 좋은 케이스, 승진을 위한 지름길이라 하더라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내가 멋대로 쌓아 올린 선입견을 부딪쳐가며 깨는 과정도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남편의 경우 이 과정이 너무 급하게 진행돼 꽤 혼란스러울 것이다.

무엇보다 낯선 업무와 그것과 상관없이 남편에게 회사가 기대하는 수준이 가장 큰 부담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매일 밤, 그 기대를 지고 퇴근하며 애써 웃는 남편을 지켜보는 나는 끊임없이 안타깝다.

앞으로 남편은 한 달에 한번, 또는 그 이상 매달 해외출장을 떠나게 된다.

수천 마일 이상 떨어진 곳에, 내가 한 번도 가보지 않아 상상할 수도 없는 도시

문화도 모르는 나라, 뭐가 있고 뭐가 없는지 모르는 호텔로 남편을 매달 보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먹먹하다.

일 년이 지나면 아이와 둘이서 보내는 시간이 모여 두세 달쯤 되는 걸까.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고, 가장 친밀한 남편이 자주 자리를 비운다는 예고된 사실에

실은, 난 벌써부터 마음 저 깊은 곳이 허하다.

모든 것이 처음이 어려울 뿐 -

결국 이 변화도 어느 순간 일상이 되어 익숙해지고 말 것이다.

처음의 초초함은 이내 일상에서 마침내 권태로 변해갈지도 모르겠지만

그 순간을 지나는 것이 우리의 몫이기에 지금은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오래전 회사 동료들과 래프팅을 떠난 적이 있다.

내 키보다 더 큰 보트를 어깨에 지고가 구불거리는 강에 띄웠다.

한참 노를 저으며 재밌게 가는데 갑자기 강사가 여긴 물살이 너무 센 구간이라

배에서 내려 그 물살을 몸으로 타고 건너와야 한다고 했다.

아찔할 정도로 경사지고 센 물살 앞에 여자 여섯은 두려움에 떨며 바위에 앉았다.

누군가는 진심으로 울었고, 누군가는 어이가 없어 웃었다.

내 차례가 되어 그 물살에 떠내려가듯 경사를 내려오고 물살에 더 떠 밀려가기 전에 누군가의 손에 어깨를 잡혀

배에 달린 줄을 간신히 잡았다.

먼저 출발했던 동료 둘이 한쪽씩 내 어깨를 잡고 배 안으로 끌어들여 주었을 때

난 나뒹굴며 마침내 안도감에 한참을 웃었다. 묘하게 스릴 있고 재밌었다.

그러나 스스로 물살에 뛰어들었던 그 순간만큼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두려웠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똑바로 낙하지점을 보고 구명조끼를 꽉 잡고 내 목을 찰랑이는 물살 안으로 걸어 들어갔는데

내딛자마자 휩쓸렸다. 모든 것이 순간이었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지금 그 물살 앞에 남편을 세워두고 아슬아슬하게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

결국 우린 이 구간을 또 잘 지나갈 것이다.

어깨를 짓누르는 엄청난 스트레스와 발등에 떨어진 두려움들을 걷어내며 휘적휘적 걸어 지나게 되겠지만,

그래도 남편이 이것만은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어차피 모든 판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내 손으로 직접 짠 것이라는 것을.

그때 래프팅을 하기 위해 돈을 지불한 것도 나였고,

그런 두려움 앞에 스스로 놓였으며 동료애를 시험하고 스릴에 기꺼이 시간을 투자한 것도 나였다.

급물살을 만났을 때 바위에 서서 이건 도저히 못하겠다 말해 강사 등에 업혀나갔던 누군가처럼

위협에서 나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온전히 나뿐이라는 것을.

누구도 타인의 인생을 단언할 수 없고, 단언해서도 안되며 비웃을 자격이 없다.

너무 지치고 힘들면 우리 같이 새로운 판을 짜면 된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언제든 어디든 그곳에 기꺼이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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