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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 May 04. 2021

첫째와 막내의 만남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나와 자유롭고 영혼이 튼튼한 남편



남편은 잘 보여도 시원찮을 연애 직전 데이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감자탕을 주문해서 먹는 남자였다. 용산의 한 영화관 푸드코트에서 내가 입고 나간 흰색 스커트와 연청색 블라우스가 무안해질 정도로 (나에게 전혀 잘 보일 생각이 없다는 듯) 무아지경으로 뼈를 쪽쪽 빨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나도 서른쯤부터 감자탕을 즐겨먹게 되긴 했지만 내 나이 스물둘, 그의 나이가 겨우 스물네 살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아무래도 스파게티가 정석 아니었나. 그러나 그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본인이 행복한 길을 찾는 능력을 그때부터 갖고 있었다. 분위기가 스파게티고 뭐고 감자탕이 먹고 싶으면 먹는 거지 뭐.


그때 나는 성격 좋고 위트 있는 이 남자가 아직까지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본 이유를 알만하다 싶었다. 다정한 아빠 밑에서 자란 내게 그의 충격적인 행태는 하나 둘이 아니었으나 왜였을까, 조조영화를 보기 전에 배고플 거 같아서 사놨다며 토스트를 들고 있었기 때문일까. 매번 약속시간에 늦어도 싫은 소리 한마디 안 했기 때문일까, 느끼한 건 싫다면서도 내가 남긴 까르보나라를 숟가락으로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었기 때문이었나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한 번 더  또 한번 더 그를 만나보기로 한 게 5년이 넘는 긴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졌다.



삼 남매 중에 막내로 태어난 남편은 주위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움 그 자체였다.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라는 남편의 생각, 거기에 살면서 더해진 남편의 자상함은 무엇이든 혼자 처리하고 잘해보려 애쓰는 나에게 좋은 자극인 동시에 큰 위로가 되었다.


K장녀인 나는 무엇이든 혼자서 그것도 잘해야 할 것 같은 감정을 느끼며 자라왔다. 진짜 잘 해내는 것과 별개로 혼자 잘해보려는 책임감과 노력들이 여전히 내 삶의 어느 부분을 덧칠하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기대하고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가족 간의 일들에서 선택과 결정에 책임을 느끼고 준비하는 나를 보게 된다.  몇 년 전 친정식구와 함께한 제주여행을 앞두고 나는 시간별로 짜인 여행 계획표를 가족들에게 발송했다. 그 계획표 안에는 날짜별로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의 일정이 들어있었는데 네비에 입력하기 좋게 식당을 비롯한 모든 목적지에 전화번호와 주소를 적어두었고 입장료와 주차정보 등 세세한 정보들을 기타로 빼서 작성했으며 식당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차선의 후보 깨알같이 기입했다. 목적지간의 이동시간과 예상경비 적어두었기 때문에 업무 틈틈이 퇴근 후, 그 문서를 작성하는데 3일 이상의 시간을 쏟았다.


이 뿐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안 볼 때 노는 융통성도 없이 사회생활에서 꼭 필요한 유연함도 없이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고 부러질 만큼 꼿꼿하게 잘 해내려 애만 쓰던 첫 사회생활을 생각하면 안쓰러울 정도다.


마침내 유연함과 노련함을 갖추게 된 때 묻은 사회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안 주기 위해 열이었다. 내가 조금만 빨리하면 편집이 빨라지니까 나는 데드라인을 한 번도 넘긴 적이 없는 작가, 대본을 빨리 쓰는, 가능한 한 빨리 일을 끝내는 작가였다.


워킹맘일 때육아의 질을 위해 애쓰고 전업맘이 된 지금은 제대로 된 엄마의 역할을 못할까 봐 매 순간 불안해하고 애쓰는 나를 보게 된다. 도대체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 와중에 스스로 잘하는지 머릿속으로 점검하고 몸은 몸대로 잘하고 싶어 바삐 움직이느라 누가 조금만 긁어도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사나운 여자가 되고 만다.



이런 모습은 삼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남편과는 확연히 다르다. 시댁과 여름휴가를 같이 보낼 때 남편에게선 정말이지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가 없다. '숙소는 정하셨대?'  '누나는 몇 시에 온대?' '밥은 다 사 먹나?' 같은 질문을 아무리 해봤자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다. '알아서 하겠지 뭐.' 이때 알아서의 주어는 아주버님이고 예상대로 아주버님은 알아서 모든 걸 준비하신다. 다들 웃으며 아주버님의 이름 뒤에 투어를 붙여 여행 이름을 만들지만 K장녀만이 그 속을 안다. 준비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을까. 이에 반해 남편은 얼마나 관심이 없는지 어느 여름휴가엔 2박 3일을 1박 2일로 알아듣고 휴가를 제대로 안내는 바람에 우리 식구만 중간에 돌아온 일도 있었다. 돌아올 때 등이 얼마나 따가웠는지 모른다. 나 진짜 싫어서 일찍 가는 거 아닌데, 억울하다 억울해! 하여튼 막내들이란!


책임감도 믿을 구석도 없어 보이는 막내지만 편의 내면은 단단하다. 자리와 책임에 얽매여 정작 안을 돌볼 줄 모르는 나와는 다르다.  


그때 빽빽하게 시간표를 채웠던 친정식구들과의 가족여행을 남편은 일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었다. 나 또한 회사 일정 때문에 하루 늦게 출발하느라 혼자 비행기를 타게 되었는데 그날 출발할 때부터 남편이 계속 연락을 해왔다. 택시 탔어? 공항 도착했어? 체크인했어? 평소와 다르게 질문을 퍼붓는 남편이 어색해 농담을 건넸다. 왜 나 비행기 못 탈까 봐 걱정돼? 웃으며 한 말에 남편이 너무나 진지하게 응, 진짜 걱정돼. 너 맨날 늦잖아.라고 대답했는데 순간 그 말에 뜨끔한 동시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헐렁한 사람인지, 입으로만 떠들지 실제로는 엉성하기 짝이 없는지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메우려 얼마나 노력하는지, 강한척해도 엉엉 울어버리기 일쑤인지 남편만이 다 알았다. 편과 함께 있을 때 나는 장녀도 누군가의 엄마도 아닌 완벽한 내가 된다. 남편만이 유일하게 나의 가장 안쪽 부분, 엉망진창인 멘탈을 알고 있다.



오래전, 결혼식을 앞두고 신혼여행지를 고를 때 남편의 말이 가끔 생각난다. 산토리니에 가고 싶은데 여긴 아무래도 무리고, 라던 말에 남편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거기 가자. 가고 싶으면 가야지. 그는 푸드코트에서 감자탕을 고를 때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었다. 그의 말 못 이기는 척 산토리니로 떠났다. 전셋집도 반이나 대출을 받아 얻은 주제에 10년 전에 800만 원이란 거금을 쓰고 산토리니에 다녀왔지만 그 순간을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상황을 생각해서 습관적으로 내가 먼저 포기하고 단념하는데 익숙해진 내 삶에서 '하고 싶은 건 해야지!'라는 남편의 말은 라웠다.


다음 해는 더 대책도 없이 새 차까지 장만해서 가계가 휘청거리는 상황이었지만 샹그릴라 호텔에 가고 싶어 져 숙박비만 200만 원을 쓰고 보라카이에도 다녀왔다. 당연히 후회는 하지 않았다. 심히 일했던 우리 둘에게 해줬던 보상이었으며 현실로 돌아와 구멍 난 가계부를 어떻게든 채웠다.



처음 아파트로 이사 갈 때도 집을 보고 난 후 남편이 물어왔다. 여기 살고 싶어? 그럼 살아야지! 하고 말했던 순간이 꿈같다. 당연히 대출은 '지금 내가 미쳤나' 싶게 받았지만 포기하는 것에 익숙한 내 앞에서 남편이 시원하게 내리는 결정들은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절실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마음에만 담아두고 수 없이 단념했던 나의 꿈들이 그를 만나 비로소 생기를 찾았다.



이상주의자인 내가 현실 감 없이 떠들던 바람들. 그저 꿈에 불과했던 일들에 대해 지극히 현실적인 남편이 하면 된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기를 내왔다. 제는 누가 책임감에 똘똘뭉쳐서 사는지 누가 대책없이 하고 싶은 일을 무턱대고 저지르는지 경계도 모호해졌다. 하지만 오래오래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 싸이월드를 돌아다니는 사진 한 장에 반해 막연히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산토리니. 스무 살 학교 도서관에서 산토리니 사진집을 빤히 들여다보며 여기 정말 멋지다 했던 그곳이 남편의 말 한마디에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신혼여행지가 된 것처럼, 자유롭고 거침없는 그의 성정을 따라가며 나는 어제보다 더 많이 가진, 더 멀리 보는 사람이 되어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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