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만에 남편이 출장을 갔다. 독일과 이탈리아를 오가는 일정을 두고 친정에서는 좋겠다는 말부터 나왔다. 시댁에선 걱정부터 하셨다. 디스크도 있는데 그 먼길을 어찌다녀오냐며 어머님의 한숨소리가 깊었다. 시누이는 전화해서 복대를 챙겨가는건 어떠냐고 의견을 주었고 남편은 시누이의 충고대로 복대를 챙겨서 양가의 걱정과 설렘을 골고루 담은채 출장길에 올랐다.
남편에게 부럽다는 말을 건넸던 엄마의 걱정은 나를 향해 있었다. 남편이 출장간 다음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서 당장 잠금장치를 추가로 달자고 재촉했다.
남편이 없는 일주일을 아이들과 보낼 생각을 하니 나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지만 정작 무서운건 현관문을 부수고 들어올 낯선이가 아니었다. 남편과 나 아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매일을 성실하게 살면서 만들어낸 일상이 깨질까 두려웠다. 익숙하고 당연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실은 팽팽하게 맞물려 있는 평화였다. 누구하나가 조금만 마음이 다쳐도, 몸이 아파도 걱정이 시작되는터라 남편이 없는 자리가 티나지 않게 일상을 잘 유지해야겠다 다짐했다.
밤사이 남편은 긴 비행을 마치고 독일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주었다. 허리는 아프지만 생각보다 컨디션도 좋고 지낼만 하다는 소식에 마음이 놓였다.
출장간 남편도 남겨진 우리의 시간도 평화롭게 흘렀다. 일상에 금이가기 시작한건 둘째녀석이 콧물을 주르륵 흘릴때부터였다. 이 더운 계절에 감기라니! 3일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꼭 붙어 지낼 수 밖에 없었다. 아이도 아팠지만 내 몸도 이상신호를 보내왔다.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책임감 때문인지 스물스물 붉어지는 피부와 입술주위를 타고 올라오는 물집이 생기고 만것이다.
입술위에 올라온 물집과 건조함이 구순염이라는건 검색을 해보고야 알았다. 여러연고를 써보았지만 쉽게 회복되지 않고 병원에 가도 차도가 없다는 글이 우수수 딸려나왔다. 이거 심각한건가 싶었지만 당장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 먼저라 둘째를 열심히 소아과에 데리고 다니고 첫째도 챙기다보니 여유가 없었다.
독일에서 이탈리아 피렌체로 출장지를 옮긴 남편은 아주 유명한 디저트 카페에 갔다며 사진을 보내줬다. 저녁엔 핏자사진을 SNS에 올리며 인생피자라는 글귀도 남겼다. 코가 막혀 밤새 잠들지 못하는 아이를 업고 안고, 등을 긁어주며 밤을 보낸 후에 열었던 메시지엔 남편이 나폴리공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져있었다.
그쯤 구순염은 더 심각해져 입술주위 피부가 갈라진 논처럼 빨갛게 선을 내고 파여있었다. 거울을 가져다 놓고 피부를 들여다볼때마다 선명하게 올라온 붉은 상처들이 눈에 보였다. 아무리 로션과 크림을 발라도 나아지지 않는듯 했다. 내가 갈라진 피부를 들여다보고 있을때 남편은 나폴리 해안을 걷고 있었다. 바다색이 예쁘다면서 친절하게 사진을 보내주었다. 도자기가 유명해 아울렛에도 들렀다면서 갖고 싶은게 없는지 컵이나 화병을 찍은 사진들도 보내왔다. 어디서나 사람손으로 만든건 다 비슷한가. 이태리제라고 해서 좀 특별할 줄 알았더니 도자기공방에서 봐온 컵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 아무것도 사오지 말라는 말을 남긴채 심란하게 거울을 들여다봤다.
그 밤, 드디어 아이의 콧물이 잦아들었다. 문제는 내 피부가 더 빨갛게 되고 가라앉을 생각을 안한다는 거였다. 입술위 50원짜리 동전만하게 생긴 피부질환은 이제 진물이 줄줄 흐르며 더 나빠질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내 입술사정을 알리없는 남편은 연달에 있던 미팅을 마치고 폼페이 구경에 나선 모양이었다.
분명 출발할땐 없었던 페도라모자를 뒤집어 쓰고 서부영화에서나 나올법한 폼페이 어느 유적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보내왔다. 내 마음과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있는 것과는 아무상관 없다는 듯이 남편이 있는 곳에서의 시간은 그대로 흘렀다.
별탈 없었다면 그랬고, 한편으론 서러웠던 일주일 끝에 남편이 돌아왔다. 유럽산 초콜릿과 새로산 페도라가 트렁크를 열자마자 튀어나왔다. 부지런히 다녀온 짐을 정리하던 남편이 무심하게 상자를 하나 건네며 선물이라고 했다. 선물을 사왔어? 여전히 붉은 피부염을 앓고 있는 내 입술이 살짝 위로 움직였다. 길죽한 상자를 열었을때 가장먼저 보인건 스테인레스 소재의 둥근 뚜껑이었다.
텀블러야? 내가 묻자 남편은 말했다. 국잔데.
뭐? 국자라고?
그렇다. 그것은 진짜 국자였다. 우리 남편이 이탈리아까지 가서 사온 메이드인 이태리산 국자.
그는 다 알고 있었다. 출장떠나기전에 가장 마지막으로 한 일이 화장실 청소와 분리수거였던 사람. 요리는 못하지만 모든 물건의 자리와 필요 쓰임을 아는 남자. 안그래도 중간 사이즈의 국자가 없어서 사려고 마음먹었었는데 귀신같이 알고 바다건너까지 가서도 실용성을 생각해 국자를 집어들고 왔다.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선물은 자고로 작고 반짝이는데서 시작되는건데 그걸 알리없는 남편이 사들고 온 국자가 재미있었다. 훗날 동생은 그 국자를 보고 다이소에서 본 거 같다고 말했을만큼(나 역시 어딘가에 메이드인 코리아나 차이나가 써있는지 찾았었다) 국자엔 이탈리아의 정체성이 조금도 들어있지 않았지만 나폴리에서 국자를 사들고 오는 남편의 마음이 좋았다.
얘, 우리중에 이태리국자 쓰는애 너 밖에 없어!
튼튼하고 좋지 않겠냐며 국자소식에 엄마도 깔깔 웃었다.
며칠 속을 태우던 구순염이 마침내 잦아들 기미가 보였다. 이태리 국자와 함께 돌아온 평범한 일상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