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2호를 떠나게 된 남편의 얼굴은 한 층 밝아졌다. 무엇보다 자신이 곧 월세를 받게 된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감추지 못하며 드디어 임대인이 되었다고 좋아했다.
나는 남편과 정 반대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1502호에 살며 윗집이 월세로 전환해 매달 140만 원씩 수익을 내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집에 누가 이사를 들어오는지, 2년 후 나가고 또 어떤 사람들이 살게 되는지 엘리베이터를 공유하며 자연스럽게 보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매월 140만 원씩 내는 사람들은 돈이 많아서 월세를 사는 걸까?
아니면 가진 돈보다 욕망이 커서 백만 원이 넘는 돈을 매달 지불하는 걸까?"
'왜 저러지?'로 성격을 압축할 수 있는 내가 일 년 전 위층의 어수선한 이사를 지켜보며 남편을 향해 물었었다. '다 그런 거지'를 담당하고 있는 남편이 "뭐 각자 사정이 있는 거겠지" 하며 대답했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각자의 사정, 그러니까 그 사정이 내게도 생긴 것이다.
남편은 1502호를 월세로 전환하며 임대인이 되었다고 기뻐했지만 내 입장에선 전혀 그럴 일이 아니었다. 그건 우리 역시 월세를 살아야 한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우리가 1502호를 월세 주면서 받은 보증금은 전세를 얻을 정도로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살고 있던 지역보다 하급지로 이사해서 보증금 차익과 매달 월세 차익을 얻을 계획이긴 했지만 보증금 차익은 차지하더라도 월세차익은 정말 보잘것없었다.
덕분에 경기도 외곽의 신도시로 이사를 결정하고 집을 구하면서 1601호에게 던졌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야 했다. 내가 가진돈과 욕망의 크기를 비교해야 했던 것이다. '24평에 살 수 있을까? 그럼 32평에 사는 것보다 월세차익이 늘어날 텐데. 근데 4인 가족이 살기에 좁진 않을까. '29평은? 아니야, 곧 큰애 사춘기가 올 텐데 남동생과 방을 같이 쓰게 할 순 없지' "2년이면 29평에 살아도 전혀 무리가 없을 거 같긴 한데'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마음을 바꿔가며 지킬 앤 하이드 부럽지 않은 자문자답을 이어갔다. 학원이 가깝고 학교가 좋은 평을 얻고 있거나 집 앞에 호수가 있으면 월세 가격은 여지없이 뛰었다. 횡단보도 하나를 두고도 월 20씩 차이가 났다. 인간의 욕망은 부동산 시장에서 가격으로 정확히 측정되는구나를 그때 절절하게 느꼈다.
집을 얻을 때 돈이 없다면 언제든 반지하로 내려갈 준비를 하라던 <세이노의 가르침>을 먼저 읽었더라면, 투자를 위해 아파트를 떠나 과감히 옥탑방에 거주했던 이지영작가의 책을 읽었더라면 내 선택은 달라졌을까, 이제 와서 문득 궁금해진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렇지 못했다. 길 건너는 수고는 감수했지만 이사하는 집이 살던 집보다 작아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34평 판상형의 아파트를 끝까지 놓지 못했다. 내가 낯선 경기도 외곽까지 왔는데 열 평이나 집을 줄여서 살아야 하나, 당시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월세 받는다고 좋아하는 남편 옆엔 울상을 짓고 월세를 내는 아내가 있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이 길 끝에 경제적 자유가 있긴 한가? 혼란스럽기 짝이 없었다. 백단위도 아니고 십 단위의 수익을 위해서 살던 환경을 바꾸고 정다운 이웃을 떠나 친구와 친정과 멀어지면서까지 이사를 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었다.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누가 어쩌다 이사를 왜 왔냐고 물으면 나는 너무나 곤란한 처지가 되고 말았다. 살던 집 근처가 공사를 해서 이사를 했다고 말하기엔 스스로 명분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다.
이사를 한 후 한 달 뒤 있었던 학부모총회엔 나를 포함해 학부모 단 두 명만이 참석했다. 참여가 너무 적어 담임선생님과 다과처럼 이루어졌던 인사에서 아이의 선생님은 이제 막 이사 왔다는 나를 향해 인사치레로 물으셨다. "아, 아빠 직장이 이쪽인가 봐요?" 그때 이사의 이유를 스스로도 납득하지 못했던 내가 뭐라고 했던가! "아 그건 아니고요. 뭐 남편이 투자를 한다고 해서 오긴 왔는데 어떻게 될지.."라며 횡설수설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예의상 물어봤던 질문에 듣는 사람을 당황하게 하는 대답이라니!!! 그날 집에 돌아와 이불킥을 하며 쓸데없이 솔직해 대충 둘러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명분 없는 이사,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낯선 도시에서 시작된 새로운 날들.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그때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남편의 출퇴근 시간은 30분 이상 늘었고, 아이들 또한 각자 적응을 위해 애쓰고 있는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왔다. 그나마 공사소음없이 조용했던게 위로가 되었을 뿐.
책 '돈은 너로부터다'에 부를 향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을 보며 인선은 말한다. "어찌 되었건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고요."라고. 그쯤 나는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붕떠있는 상태로 지낼 수는 없었기에 이사의 명분을 만들고, 경제적 자유를 향한 다른 길을 찾기 위해 달라지는 편을 택했다. 본격적으로 부동산 책을 읽고 제태크 관련 도서를 찾아읽기 시작한 시점, 읽은 책들을 인스타계정 '소소한독서생활'에 올리며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애쓰던 시기가 이때였다. 잡히지 않는 경제적자유, 보이지 않는 미래는 여전히 변함 없었지만 신기하게 책을 읽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다시 도전해 볼 용기가 샘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