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작은 고양이를 위한 기도

염원(念願)

by 김홍철

동양권에서는 향을 피워 특정 대상을 두고 소원을 빌거나 행복을 기원하는 문화가 있다. 대상을 마음속으로 생각하며 현재보다 더 나아지기를 원하는 것을 우리는 염원(念願)이라고 한다. 생각 념(念)과 원할 원(願)이 이루어져 만들어진 단어다. 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며 더 나아지길 간절히 바라는 일종의 주문이다.


상해 정안사에서


키우던 고양이가 세상을 떠났다. 엄연히 말하자면 부모님께 맡긴 나의 고양이였다. 10여 년 전 잠시 내가 부산에 내려가 있는 동안 카페에서 너무 예쁘게 생긴 샴 고양이를 보고 서울에 있는 형에게 데리고 오라고 부탁을 했다. 형은 고속열차를 타고 요요를 데리고 오는 동안 이 쪼꼬만 녀석이 워낙 크게 울어대서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밖에서 서서 왔다며 얼굴이 많이 붉어져 있었다. 하지만 난 예쁘게 생긴 고양이를 입양했다는 기쁨에 형의 무겁게 내려앉은 감정을 뒤로한 채 그녀가 들어있는 가방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곧바로 그녀에게 요요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요요, 얼마나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던지 다들 좋아하던 게 기억난다. 요요는 작은 덩치에 입도 꽤 까다로왔고 나는 그런 도도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요요가 새 집에서 적응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고 곧바로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요요를 두고 난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다. 그리고는 그 이후로 요요를 많이 보질 못했다. 떨어져있는 동안 그리웠지만, 이내 곧 그리움은 사그러들었고, 부산집에 내려가도 요요는 더이상 내게 오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간의 유대감은 끝이 났고,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며칠 전, 요요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새끼같았는데 책임지지 못할 이기심으로 요요를 조금 일찍 보낸 것 같다는 생각에 오늘 하루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아버지는 며칠동안 슬픔에 또 술을 하시겠거니와 매일 요요와 같이 잠을 잤던 엄마는 이렇게 보낸 허망함으로 가슴이 쓰라리시겠지. 거기다가 데리고 왔을 때 찰나의 기쁨과 이 알량한 이기심 덕분에 나는 이 커다란 슬픔을 부모님에게 고스란히 떠 넘겨버리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속죄하는 마음을 담아 요요를 위해 간절히 염원(念願)한다.


다음 생애에서는 아프지말고 더 좋은 주인 만나서 행복하길 바란다. 이 생에 널 만난 건 행운이었어. 너 때문에 행복했어.


2018년 10월 어느 밤에

148381_109478199122338_2267761_n.jpg 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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