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모양

스페인 마드리드라고 다르지 않다.

by 김홍철

마드리드의 거리는 한 때 승리의 무적함대를 이끌며 세계를 호령했던 스페인의 찬란한 문화를 반영하는 듯 온통 장식으로 꾸며진 예술작품과 같다. 그랑비아의 메트로폴리스 빌딩 위 천사상은 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날개를 펴고 온 하늘을 안아주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아래 여행객으로 보이는 힙한 두 할머니가 있었다. 지긋이 나이가 들어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화려한 패션일색이었다. 노상카페에 앉아 서로 이야기하던 이 노인 중 하나는 나비같이 나풀거리는 머플러를 목에 두르고, 모자는 70년대 영화에서 나오는 배우처럼 한 쪽으로 꺾어 쓰고 있었는데 이따금씩 담배를 물고 연기를 공중에 흩뿌렸다. 그녀는 연신 말을 열심히 하다가 커피 한 모금으로 잠시 도로를 응시한 채 휴식하는 듯하더니 또다시 말을 줄기차게 꺼냈다. 말 많은 노인 맞은 편에 앉아있던 또 다른 노인은 하얀 블라우스에 진파란 페도라 아래 각진 안경을 쓰고 있었다. 페도라를 쓴 노인은 상대방 얘기가 재미있는 듯 가끔씩 추임새를 넣으며 크게 웃곤 했다. 아마 둘은 오랜 친구 사이처럼 보였다. 옷을 입는 취향도 주고받는 대화도 영락없는 평생의 단짝이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그녀들의 젊은 시절 과거가 잠시 보이는 듯 했다. 말이 많던 노인이 안쪽 사람을 부르더니 뭐라고 얘길하는지 웃으며 잔뜩 또 떠들어대는 걸 보니 거기 단골인 듯해 보였다.


오랜 이야기 끝에 그녀들이 드디어 일어났다. 다시 선글라스를 쓰고, 테이블 위에 널려있던 물건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고선 주변에 잃어버린 건 없는지 머리를 돌려 여기저기 확인하면서도 일어나는 순간까지 그녀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여전히 자신의 머플러를 나풀거리며 거리에서 유유히 사라졌다. 두 노인의 모습은 미국드라마 섹스앤더시티에서 나오는 캐리와 사만다의 아주 먼 훗날 모습을 보는 듯해 흥미로웠다.


해가 하늘에서 낮아져 빌딩 그림자가 길어져 쌀쌀해지자 나도 슬슬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저 멀리서 한 노인이 머플러가 다 풀린채 허겁지겁 빠른 걸음으로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두고 갔던 테이블 위 은빛 라이터를 주워들고 간다.


난 집을 나설 때 쯤이면 언제나 두고 가는 물건이 없는지 들여다 보다가도 차에 시동을 켜는 순간 잊은 물건이 기억나 다시 집으로 뛰쳐 올라갈 때가 많다. 많을 때는 다섯 번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오죽하면 학교다닐 때 아침 등교하면서 내가 집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날엔 엄마가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급하게 오는 노인을 보며 웃음을 짓고 말았다. 어딜가든 사람사는 모양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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