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인연

점심을 먹다가 깨달음을 얻다

by 김홍철
호치민 통일궁 근처 레스토랑 프로파간다에서 마주친 사람들

'낯선 거리를 걷고 또 걷다가 보면 모르는 사람들과 계속 지나치게 된다. 그 사람들과 각 다른 공간에서 자주 눈을 마주치기도 하고 우연찮게 방향이 맞아 같은 길을 걸어가게 되는 경우도 있더라.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전혀 몰랐던 상대방 얼굴이 익숙해진 얼굴로 바뀌게 되는데 이제부터는 우연이 아닌 찰나의 인연이라는 범주로 들어서게 된다. 내가 이 찰나에서 나의 인연으로 발전시키고 싶다면 그대 혹은 내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어떤 인연이든 되게 하려고 억지로 끌고가면 반드시 그르치게 된다. 마음만 먹어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몸이 가게 되어있다. 그리고 두어라. 그러면 어느 순간 접점에서 우리는 만나게 되어있다. 서로에게 마음만 있다면 말이다.'


윗글은 오래 전에 여행지에서 느꼈던 감정을 옮겨 썼던 글이다. 이 글이 다시 생각이 난 이유는 이렇다.


호치민의 통일궁으로 가기 전에 근처 큰 간판이 걸려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이름하여 공산주의 땅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 '프로파간다(propaganda)'. 난 이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낯선 밥을 먹었다. 유럽에서 온 여행객들만 앉아있었다. 아마 그 레스토랑에서 혼자 밥을 먹는 동양인은 나 혼자인 듯 했다. 난 언제나 삼시세끼 맥주 한 잔 하지 않을 때가 없었기에 여전히 사이공 한 병으로 시작했다. 워낙 많이 걸었던 탓에 배가 고파 고개를 처박고 밥을 먹고 있다가 숨을 쉬러 바다 위로 올라온 물개마냥 머리를 들었는데, 어떤 여자가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너무 예뻐서 숨이 멎을 것만 같았지만, 홀로 여행을 온 여행객의 쿨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여유있게 살짝 웃었다. 그녀는 밥을 먹기 시작했고, 날 쳐다보지 않았다.


찰나의 인연? 많은 걸 깨달았다. 답은 하나더라. 그냥 잘생기면 되는 걸. 난 그렇게 그날 완벽하게 뭉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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