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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철 Nov 07. 2019

로마 21세기 국립현대미술관(MAXXI)을 걷다

MAXXI에서 건축적 산책

*중부매일 칼럼 기고


로마 21세기 국립현대미술관 / 건축의 탄생에서


나는 여행지에서 목적지에 빠르게 도착하는 것보다 길 위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이벤트를 겪는 것을 더 좋아하는 이유로, 먼 거리를 이동하더라도 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주로 걷는 방법을 선택한다. 길은 홀로 뻗었다가 여러 갈래로 나뉘어지고, 다시 모여 광장을 이루다가 또다시 사방으로 흩어지기에 전혀 예상할 수가 없다. 그래서 여행길 위에서 일어나는 감정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느끼는 감정보다 더 다양하고 풍부하다. 드럼통 위에서 와인을 나누는 노인들, 좁은 길을 다 차지하고 축구를 하는 동네 꼬마들, 막다른 길인 줄 알았더니 사람 몸통 하나만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곳에서 마주친 아름다운 여인, 커다란 강아지 두마리를 겨우 힘겹게 이끄는 할아버지, 머리 위로 온갖 색으로 널려있는 형형색색의 빨래 향연. 길이 그렇다. 길을 돌아서는 순간 모든 게 다채롭고 새롭다. 이렇게 길 위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온갖 이벤트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그러다가 목적지를 잠시 잊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그래서 나는 걷는다.

이런 길을 닮은 건축이 있다. 21세기 국립현대미술관. 영어로 National Museum of XXI century arts. 줄여서 MAXXI. 과거 문화유산이 가득한 곳에서 현재의 세련된 모든 것을 갖추었을 것만 같은 현대미술관이다. MAXXI는 서울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로 유명한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으로 계획한 지 11년만인 2010년에 완공됐다. 작년 이맘 때쯤 이탈리아 여행 중에 들렀었는데, 거대한 로마의 과거문화유산 속에서 빠져나와 현재를 만난 것 같아 새로웠다.

이곳은 긴 직사각형 덩어리들이 서로 아래위로 겹쳐 뒤엉켜 있다. 내부도 다르지 않다. 계단과 통로가 바닥에서 머리 위로, 머리 위에서 다시 바닥으로 이루어지고 서로 겹쳐져 내가 마치 다른 차원으로 오고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위로는 천창을 내어 자연의 빛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밑으로 여러 겹 레일을 달아 마치 강물처럼 흐름을 만들어 방향을 만들어 놓았다. 이 모든 건 마치 길과 같아 돌아서면 새로운 이벤트가 일어날 것처럼 미술관 내부를 탐험할 수 있게 해주었다. 길을 걷다가 불현듯 광장이 나오는 것처럼 예상치 못할 넓은 전시장이 나오기도 했고, 또다시 길이 흩어져 있어 걷는 내내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했다. 동선의 마지막 공간을 들어서는 순간 막다른 골목이 아닌 넓은 창으로 도시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은 잘 알지 못하는 길을 탐험하기 좋아하는 나에게 있어서 완벽한 건축이었다.

미술관의 외부와 내부


건축 모티브 / 건축의 탄생에서


영어에 'via'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통하다. 거치다'라는 뜻이 있는데, 로마에서 '길'을 'via'라고 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로마라는 도시는 모세혈관처럼 무수하게 많은 길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 고대 로마제국은 주변국 사이에서 우위를 차지해야만 했다. 국가발전에 가장 중요한 건 물자수송과 정보전달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어느 곳이든 쉽게 갈 수 있는 길이었다. 그만큼 로마는 소통과 연결을 중요하게 여겼다. 건축가가 일부러 계획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로마의 길과 MAXXI는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더욱 의미 있게 다가왔다.


가끔씩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여행길에서 이거 하나는 알겠더라.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길을 걷게 된다. 결국 내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뿐이지 가지 못할 곳은 없었다는 걸. 옳거나 틀린 길은 없다. 길은 어디서나 통하게 되어있다. 인생은 흔히들 여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광장만 기억하면 된다. 과정은 그저 즐기기만 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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