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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철 Sep 19. 2019

공간과 마음의 관계_프랭크 게리의 집

청소하기 싫다는 말을 참 길게 쓴 글  


프랭크 게리의 집 / 건축의 탄생에서


필자는 아침에 눈을 뜨면 침대에서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하다가 겨우 일어나 책상에 앉는다. 그렇게라도 책상에 앉아있으면 마치 출동을 앞둔 독수리 오형제처럼 우주선에 앉아있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내 작업공간은 대략 이렇다. 많은 종이가 깔린 책상 위로 연필과 펜이 종류별로 놓여있고, 맥북에 연결된 두 개의 모니터가 있다. 의자에 앉아 앞을 바라보면 벽 전체에 덕지덕지 붙은 그림과 길게 나열된 책이 책상 전체를 감싸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는데, 어디든 손을 뻗었을 때 거침이 없어야 하고, 머리를 돌렸을 때 보이지 않는 구석이 없어야 한다. 다른 일을 하게 될 때면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될 만큼 서로의 간격은 적당히 질서를 이루고 있어 항상 몸에 꼭 맞는 아이언 맨의 수트 같아야 한다. 거기에 커피 한 잔이 올려져 있으면 모든 것은 완벽하다. 그렇게 몇 시간이고 앉아 일할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필자는 뱃살에 예민하기에 한 시간 정도 일을 하고 나면 꼭 일어난다. 그리고 의자 뒤에 있는 높은 스탠딩 테이블에 노트북을 올려 다시 작업을 시작한다. 오래 서서 일을 하다 보면 발뒤꿈치가 아파 바닥이 푹신한 실내화를 꼭 신어야 오래 서 있을 수 있다. 우선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온몸을 지탱해 줄 의자다. 의자 위에 땀을 흡수할 수 있는 방석을 두었고, 허리를 받쳐줄 두꺼운 쿠션이 있다. 일을 하다 보면 의자 등받이에 기대 휴식을 취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발을 뻗어 올려놓을 곳이 필요해 낮은 서랍을 거기에 두었다. 펜은 왼쪽 그 외 잡다한 용품들은 오른쪽에 배치했다. 이유는 없다. 그게 편해서다. 이 좁은 공간에서도 같은 곳에 오래 머물다 보면 금방 싫증이 난다. 그래서 곳곳에 간이 테이블을 두어 몸의 방향을 바꿔가며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곤 한다. 그렇게 책상은 ‘ㄱ’자로 주로 사용하다가 ‘ㄷ'자로 바뀌기도 하고 혹은 'F’자로 정렬해서 쓰기도 한다. 이렇게 내 공간은 좁지만, 자유롭다. 내 마음에 꼭 든다. 

집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성격과 직업이 여실히 드러난다. 대개 집은 휴식을 하거나 가족을 보호할  목적으로 자신의 취향대로 집주인에 맞게 만들어진다.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지은 프랭크 게리의 집은 목적이 남들과 다르다. 게리는 자신의 집을 살기 좋게 만들기보다는 건축 실험 도구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공간에서 느껴지는 안락과 편의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괴상망측하고 불편한 집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주변과 어울리지 않은 괴상한 형태 때문에 이웃들에게 항의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가족마저 더는 그 공간에서 살기 힘들다며 매일같이 불만을 토로할 정도니 대충 얼마나 불편한 구조였는지 짐작할 만하다. 

건축의 탄생 프랭크 게리 편에서
건축의 탄생 프랭크 게리 편에서


게리의 집은 도대체 어떻게 지어졌을까? 먼저 1978년 게리가 집을 지을 때 방 두 개와 거실이 있는 일반 집과 다를 것 없는 박공지붕으로 무리 없이 건축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게리의 건축 실험정신 덕분에 집은 점점 세상에 없는 형태로 변해갔다. 집 주변을 낮은 콘크리트 담으로 올렸다가 다시 함석판을 둘러 부엌을 만들고, 그 위로 삐딱한 프레임으로 된 유리창을 만들어 공간에 빛을 들였다. 거기다가 각종 건축재료를 여기저기서 쓰다 보니 피카소의 그림처럼 여기저기 찢어지고 나누어진 형태가 되어버렸다. 게리의 건축과 공간을 보면 정해진 양식이 없다. 휘어져 있다가도 반듯하다. 생각을 틀에 가두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어나갈 뿐이다. 결국 자유로운 게리의 마음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을 완성시켰다.

흔히들 ‘내 마음이야’라고 말을 한다. 그 말은 항상 ‘상관 말아’와 늘 붙어 다닌다. 내가 원하는 바대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내 의지로 무엇을 결정할 때 나오는 소리다. 공간은 개인적인 영역이기에 자신의 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곳이다. 그 마음이 공간을 만들어나간다. 내 마음이 담겨있는 공간은 그렇게 넓지 않다. 한 사람이 살기에 아주 적당해서 집을 늘리지도 더 줄이지도 않는다. 내가 쓸 공간은 손과 발이 닿고 만져지는 공간으로 충분한데, 바라보는 공간이 더 커져 버린다면 이내 그 빈자리가 쓸모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마음이다. 더 늘리지도, 더 줄이지도 않은 내 마음은 내 공간에 그대로 반영된다. 

그래서 누군가를 집으로 들인다는 건 내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가끔씩 친구가 왜 집 청소를 하지 않았느냐라고 물어볼 때면, 난 그렇게 말하고 싶다. ‘내 마음이야. 널 여실히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이야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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