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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철 Jul 09. 2019

채워진 비움의 미학

가득 채워진 비움의 건축, 소크생물학연구소


루이스 칸의 소크생물학연구소 / 건축의탄생에서

-사람들이 버스 안에서 가는 내내 시끄러운 거야. 나중에는 잠도 못자겠고 피곤하더라고. 그런데 있지, 어느 순간 약속이라도 한 듯 버스 안이 갑자기 조용해지더라?

-왜?

-바다가 나왔거든. 서해대교를 지나는데 아스라한 잔물결이 반짝반짝해 대륙 사람들은 바다 볼 기회가 별로 없지 않나? 몇몇은 아예 자리를 옮겨 심각한 표정으로 바다만 보더라고.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고. 가족 생각이 나는지 뭐가 그리운지 서로 한마디도 안 해. 그런데 이게 그냥 고요가 아니라 엄청나게 시끄럽던 와중에 들이닥친 고요라 되게 인상적이었어.


김애란 소설 '바깥은 여름'에서 이수와 도화가 횟집에서 나누는 대화의 일부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 일이 기억났다. 퇴근을 하던 중에 전철이 한강을 건너자 나는 고개를 들 수 밖에 없었다. 붉은 하늘은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이불처럼 덮었고, 솟아있는 빌딩 콘크리트를 붉게 적시고 있었다. 노을과 맞닿아 있던 한강의 절경은 열차가 다리를 지나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조그맣고 네모난 빛 속에 깊이 처박혔던 내 머리를 꺼내주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나 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스마트 폰을 내려놓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강의 노을


거대한 자연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 있다는 건 문명의 발달로 자연과 멀리 떨어져 버린 인간의 숨어있던 동물적 DNA가 자연스럽게 겉으로 발현된 건 아닐까? 문명을 최고로 여기던 인간은 결국 자연을 동경하고 있었다.



그 DNA는 건축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난다. 캘리포니아 주 샌디에고에 거대한 대서양의 빛을 빨아들이고 내뱉기를 반복하는 묵직한 콘크리트 덩어리가 하나 서있다. 거기에는 나무도 흙도 없다. 콘크리트 덩어리 사이로 가늘게 흘러가는 물줄기만 하나 있을 뿐 아무 것도 없다. 이 건축은 루이스 칸이 설계한 소크생물학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이다.

루이스 칸의 소크생물학연구소 (flickr.com/photos/tatler/339218853)


소크생물학연구소는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어낸 노벨상 수상자 조너스 에드워드 소크 (Jonas Edward Salk)박사의 의뢰로 루이스 칸이 1959년부터 1965년에 걸쳐 지은 건축이다. 칸은 설계를 네 번이나 수정하면서 결국 마지막에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을 만들어냈다.



칸은 모든 연구원들이 바다를 바라볼 수 있게 삼각형 모양의 연구실 창을 바깥으로 돌출시켰고, 천장이 높을 수록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다고 믿은 소크의 요구대로 천장을 3미터로 높게 만들었다. 또한 건축의 중심공간인 마당을 나무 한 그루 없이 모두 비워 사색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소크생물학연구소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다섯 명이나 나온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다들 확신한다.

건축의 탄생 루이스 칸 편에서


우리는 흔히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사용한다. 다시 풀이하자면, 자연처럼, 자연과 같다는 말인데, 순리에 맞게 억지로 꾸밈과 이상함이 없고, 애쓰지 않고도 저절로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다. 소크생물학연구소는 인간이 자연을 동경하는 마음으로 모두 비우고 자연을 받아들였다. 비워지는 것은 잃는 것이 아니다. 비어있다는 것은 채울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비어있는 곳을 억지로 채우려고 하면 부자연스러워진다. 자연스러울 때 모든 건 순리대로 흘러간다. 이 건축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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