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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철 Dec 19. 2019

건축가 김수근의 터닝포인트. 부여박물관

부여박물관의 정체성




현재 부여군 문화재 사업소로 사용되고 있는 구 부여박물관 / 건축의 탄생에서

1967년 8월 19일. 동아일보에 한 기사가 뜬다.


 '일본 신사와 같다. 부여박물관 건축양식에 말썽'


백제유물을 보관할 목적으로 새로 지어질 부여박물관은 4천500만 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단층 건축물로 계획됐다. 건축가 김수근이 맡아 진행하면서 크게 문제가 터졌다. 예산 부족으로 잠시 공사가 중단된 틈에 기자가 들어와 사진을 찍고 기사를 낸 모양이었다. 박물관 계단에서 올려다보면 일본 신사 입구에 있는 도리이(鳥居)와 형태가 비슷하고, 건물 지붕은 일본 지붕 장식인 지기(千木)와 비슷하다는 내용이 기사에 실렸다. 타이밍이 좋지 않았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대한민국은 일본에 많이 예민해 있던 터라 이 문제는 더욱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왜색짙은 부여박물관을 다룬 신문기사와 논쟁


김수근은 서울공대 건축학과에 입학하고 나서 한국전쟁이 터지자, 일본으로 밀항해 동경예대에서 요시무라 준조에게 건축을 배웠던 대한민국 1세대 현대 건축가이다. 그랬던 그는 일본에 있을 때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공모전에 당선돼 건축계에서 명성을 크게 얻고 있었던 데다가, 국무총리 김종필의 애정을 듬뿍 받고 있었던지라 주변에서 여간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한때 그의 스승이었던 건축가 김중업은 부여박물관을 두고 건축은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인데, 수치스러운 건물을 지었다며 김수근을 거세게 비판했고, 물론 김수근을 옹호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각계 전문가들이 비판 여론에 하나둘씩 가세해 여론은 점점 나빠져만 갔다. 그 시국에 일본을 찬양하는 역적으로 몰리고 있던 김수근은 그에 맞서 도리이는 백제 토기의 선으로 일본에 전수해 준 양식이며, 김수근만의 양식이라고 대응했다. 일본에서 서양문화에 깊이 취해있었던 그를 모르고 있는 사람이 없었던 지라 이런 대응은 얼토당토않은 변명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김수근은 요청대로 계획을 수정해 단청을 넣고, 기와를 얹었다. 당시 육중하고 거대한 국가사업 가운데에서 승승장구하던 김수근에게 있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건축의 탄생 김수근편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서로 공격하고 대응하고 있는 동안 누군가 김수근을 찾아온다. 훗날 국립중앙박물관장이었던 미술사학자 최순우였다. 그는 김수근에게 아무 말없이 자신을 따라오라고 한다. 최순우는 김수근을 데리고 부석사 무량수전과 병산서원 등 한국 전통건축을 함께 답사한 것이다. 최순우와 함께한 한국 건축 답사는 김수근에게 많은 깨달음을 준 모양이었다. 김수근은 한국 전통건축을 보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던 것은 자신이 한국을 너무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는 의미이다.

좌 : 최순우 선생과 김수근 선생 / 우 : 부석사 무량수전 (출처 :위키피디아)


이후로 김수근은 한옥 형태로 된 건물을 짓지 않았다. 건축회사인 공간사옥을 만들어 능력 있는 예술인을 지원할 문화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수많은 설계를 진행하며 자신만의 건축 철학을 만들어나갔다. 그러다가 그에게 다시 박물관을 지을 기회가 찾아왔다. 그게 바로 국립 청주박물관이다. 당시 공간에서 근무하던 건축가 승효상이 기본설계를 했다. 국립 청주박물관은 김수근이 자주 쓰던 콘크리트와 벽돌로 한국의 겸손함을 담아 청주 우암산 아래 한옥의 형태로 낮게 지어져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형상이 됐다. 국립 청주박물관은 1988년 한국 건축가협회상을 받을 정도로 반응이 꽤 좋았지만, 안타깝게도 자신이 죽을 때까지 어려운 과제를 모두 해결해야만 한 것처럼 그렇게 유작이 됐다.

국립 청주박물관 / 출처 : dongA.com


김수근은 세운상가, 남산자유센터, 남산 MBC 사옥, 서울 종합운동장 등 경제개발계획 중심에 서서 대한민국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남영동 대공분실을 짓는 등 독재정권 아래 권력형 건축가로 회자되기도 했던 반면에 그는 백남준, 공옥진을 비롯해 김덕수 사물놀이패까지 많은 예술가들을 지원하며, 서울의 멋진 로렌초라며 타임지에 소개될 정도로 예술을 사랑하는 예술가이기도 했다.

타임지에 실린 김수근 / 출처 : kimswoogeun.org


살아가면서 정답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살아갈 때와 모르고 살아갈 때의 길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타인이 알려주기도 한다. 그걸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는 자신이 결정할 일이다. 사실 어떤 선택을 해도 상관은 없다. 결국 어떤 길이든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이라는 것은 분명하니까.



*중부매일에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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