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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홍철 May 24. 2021

빈센조 까사노의 건물, 세운상가

세운상가의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

나의 목표는 이 건물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드라마 빈센조의 첫 장면에서 한국계 이탈리아 마피아인 빈센조 까사노는 이렇게 한 마디 내뱉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드라마의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빈센조는 건물(금가프라자) 내부에 숨겨져있는 막대한 양의 금괴를 몰래 빼내야 하지만, 사이코패스가 총수로 있는 바벨그룹은 금가프라자를 철거하고 그곳에 초고층 빌딩을 세우려고 한다. 계획에 차질이 생긴 빈센조는 금가프라자 입주민들과 함께 '악은 악으로 맞선다.'는 신념으로 하나씩 바벨그룹을 무너뜨려 나가며 드라마는 진행된다.  


*중부매일에 기고

드라마 빈센조의 첫 장면


금가프라자, 이 건물 어디서 많이 봤다했더니 아니나 다를까, 세운상가였다. 세운상가는 공간사옥으로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세운상가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세운상가가 지어지기 전 1950년 한국전쟁 이후에 집을 잃은 사람들과 타 지역에서 몰려든 이주민들은 종로 일대에 판잣집을 짓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판잣집이 점점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사창가도 늘어났다.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자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는 취지로 경제개발계획을 열심히 진행하고 있었고, 서울시는 부산시와 개발 경쟁구도가 되어 대규모 개발정책으로 보기 좋지않은 지역을 빠르게 정리할 계획을 진행하기로 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 시장은 불도저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별명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개발계획을 위해서라면 뭐든 쓸어버리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김현옥 시장은 그 당시 경제개발계획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던 건축가 김수근에게 서울시 개발계획에 참여해달라고 부탁한다. 내용은 즉슨, 서울의 중심인 종로와 퇴계로 일대를 폭 50m에 길이가 무려 1km인 건축물을 세운상가-현대상가-청계상가-대림상가-삼풍상가-풍전호텔-신성상가-진양상가 순으로 총 8개의 건축물을 일렬로 길게 이을 계획이었다. 

건축의 탄생에서


대한민국 수도중심을 거대한 축으로 가르는 이 거창한 도시계획은 르 코르뷔지에의 부아쟁계획과 알제계획의 플랜오뷔와 같은 거대도시계획에서 영향을 받았다. 르 코르뷔지에는 당시 급부상한 세계최고의 건축가였고, 그가 세운 건축이론의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건축가는 르 코르뷔지에를 선망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복잡해져가는 서울시도 그의 계획을 받아들였다. 


르 코르뷔지에의 부아쟁계획과 알제계획

이 계획은 간단히 말해 땅 위에서 낮게 집을 짓고 사는 것에서 벗어나, 높은 고층 건물을 올려 수직적으로 집을 지어서 높아져만 가는 인구밀도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즉 지저분한 바닥에서 벗어나 모든 거주와 통행은 땅 위에서 이루어지는 도시계획이다. 이를 토대로 서울시는 세로 축 가장 선두에 세운상가를 세워 그 이름마저 거창하게 '세상의 기운이 이곳에 다 모이라'는 의미로 종묘 앞에서부터 길고 높게 건축을 늘어뜨렸다.


 

세운상가를 선두로 늘어선 주상복합아파트 / 서울역사아카이브 museum.seoul.go.kr


그러나 건축가 김수근의 계획대로 건축이 진행되지는 않았다. 워낙 건축계가 심각하게 융통성으로 돌아가던 시대였기에 현장에서 힘들다싶으면, 건축설계와 다르게 시공해버린 것은 일상다반사였다. 그렇게 결국 공중통행로는 없어지고, 서로 건물끼리 연결해야 하는 동선은 죄다 끊겨버리고 말았다. 


세운상가 계획 단면도


하지만 그런 건 문제가 아니었다. 오로지 권위적이고, 정치적인 이슈가 다분했던 건축이었기에 준공식은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해서 리본을 끊었고, 세운상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들만 거주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영광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용산에 커다란 전자상가가 들어서 이곳에 있던 상인들이 그곳으로 죄다 이전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운상가는 점차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다가 슬럼화되어 온갖 불법 비디오와 만화책 등이 몰래 유통되는 곳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시간은 흘러 2008년에 서울시는 우범지대가 되어버린 세운상가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가 이곳은 역사적, 건축적으로 보존해야 할 중요한 건물이라는 문화재청의 만류에 철거를 철회하고, 서울시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세운상가를 많은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거기다가 서울시는 예전 계획을 받아들여 세운상가와 연결되어야 했던 다른 상가와 공중보행이 가능하게 다리를 만들고, 청년 상인들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예전보다는 밝은 모습으로 세운상가를 새롭게 완성했다.


아무리 군사정권시대에 권위성을 앞세워 큰 벽을 세워 도시 중앙을 가로막았어도,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해 이곳이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 되어 관광지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빈센조 까사노가 이런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았다면, 건물을 무너뜨리는 생각은 좀 미뤄두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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