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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 Oct 24. 2017

나를 위로하는 것들

동네 골목길에서 사귄 벗들

웬 고양이 사진집이야? 여행 책은 안 나와요? 지난 5월 사진전을 하며 마주쳤던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그러게 나도 내가 고양이 사진으로 책까지 만들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나는 고양이를 키우지도 않고 동네 고양이들에게 해준 거라곤 기껏해야 먹을 거 몇 번 준 것뿐인데. 그랬던 내가 왜? 부암동에 이사 오고 난 후부터 꾸준히 동네 골목길을 찍은 게 시작이었나? 자연스레 칠 년이란 시간이 흐르며 사진도 함께 쌓였고 그 사진들을 본 지인들이 좋아해 줘서 좋은 일에 쓰고자 엽서를 만들고 전시회를 하게 된 것 까지. 과연 그 시작은 뭐였을까? 가만 보면 모두 다 '나를 위로하는 것'이 시작이었다.


이 동네 이사와 내가 제일 먼저 사귄 친구들은 사람이 아니었다. 동네 골목길의 길고양이들과 동네 담벼락 위로 빼꼼 고갤 내밀고 있던 이름 모를 집의 개들이었다. 그들도 날 친구로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건 내가 그들을 친구로 생각했다는 것. 매일 같은 골목길을 지나다니면서 늘 그 자리에서 나를 쳐다봐 주는 그들은 내게 큰 심적 위로가 되어 주었다. 비단 부암동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여행을 다닐 때에도 늘 길가에 있는 그들에게 눈길을 주곤 했었다. 이유는 딱히 없다. 보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이 편안해지면서 그냥 좋았다.


숙소에서 키우는 동물들은 여행 중 언제나 가장 좋은 벗이 된다
잘 쉬란 말 한 마디보다 강력한 건 코앞에서 잠든 동물을 보고 있을 때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위로하는 방법 하나쯤은 다 갖고 있을 거다. 잘 모를 땐 '언제 가장 행복했나?' 한 번 떠올려 보면 된다. 가족과 함께한 순간을 떠올린 사람에겐 가장 큰 행복과 위로가 되는 존재가 '가족'일 거다. 반대로 누군가에겐 가장 큰 무게로 느껴지는 게 '가족'일 수도 있다.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외국에서 프로그래머로 한창 일하다 한국에 돌아와 돌연 요가 선생님이 되었다. 몸과 마음이 가장 힘들 때 그녀에게 가장 힘이 되어 준 게 요가였다고 한다. 또 누군가는 힘이 들 때마다 친구들을 우르르 끌고 맛집에 갔고 누군가는 홀로 교회로 향했다. 우리는 저마다의 위로처가 이미 있을 거다. 그렇다면 내게 가장 강력한 위로가 되는 건 뭐였을까.


자연이었다. 맑은 물과 깨끗한 공기,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와 계절 따라 바뀌는 자연의 색깔을 보는 것. 난 이런 것에 한없이 위로받는 사람이다. 하지만 오십 년 후쯤? 아니 어쩌면 그보다 일찍 사람들은 이럴지도 모르겠다. 그땐 피부에 닿아도 되는 깨끗한 햇빛과 바람이 무료였지. 그 시절이 정말 좋았어,라고 말이다. 과거엔 상상도 못했겠지? 지금처럼 물을 사고파는 세상. 가까운 미래엔 물처럼 공기를 사고팔고 맑은 하늘을 보기가 어려워지진 않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적어도 우리 죽을 때까지는 그런 세상이 오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 자체가 다음 세대에게 얼마나 많은 빚을 지게 할까? 잠시 말이 샜는데 자연을 감사히 여기는 마음만큼 환경을 보호하잔 말도 하면 좋겠지만 우선은 내게 자연만큼 값싸면서도 귀한 힐링 도구가 없단 말을 하고 싶었다.


쇼핑을 하면 더 비싼 것을 사지 못해 아쉽지만 파란 하늘은 봐도 봐도 무료고 맛있는 음식은 다 먹으면 없어지지만 맑은 물은 쓴다고 당장 사라지지 않는다. 구름과 바람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니 바라만 봐도 지겨울 틈이 없다. 다른 무엇보다 자연이 가장 강력한 위로가 된다는 건 내겐 정말 축복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과 후의 변화는 카메라 메모리 카드만 봐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한때 옷과 신발, 음식 사진으로 빼곡했던 자리가 이제는 나무와 하늘, 동물들의 사진으로 채워져 있다. 이때 즈음이었나 자연스레 난 길 위의 동물들을 마음에 담기 시작했다.


지난 칠 년간 수 천 번은 지나다녔을 같은 골목길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치는 길고양이들을 찍었다.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 선물했고 그게 인연이 돼 전시를 하게 고 전시를 한다책도 만들고 싶어졌다. 책을 만드는 김에 출판사만들었더니 두 권의 책이 뚝딱 만들어졌다. 내가 다시 책을 만들게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이 모든 일이 지난 몇 달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내게 일어나버렸다. 책과 엽서의 수익금은 모두 길고양이들을 위해 쓰인다. 나를 위로하던 길고양이들이 이제 다른 길고양이들의 삶을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다시 한번 나를 진하게 위로해 주고 있는 요즘이다.  


이웃집 개들 사진으로 만든 두 번째 사진집 <숨은 강아지 찾기: 부암동 골목길>


지난 달 3쇄 찍은 첫 번째 사진집 <숨은 고양이 찾기: 부암동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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