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쓰는 일기
#.1
지금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글을 써서 먹고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로또를 기대하고 이 세계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 대신 작가를 일종의 대체 정체성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지난여름 TEDxSeoul 강연에서 말했듯이("예술가가 되자, 지금 당장.") 예술을 자격시험을 통과하여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로 여기지 말고 지금 당장 자기 즐거움을 위해 시작하라는 것이다. 대신 그런 길을 택한 이들은 소중한 휴일이나 휴가, 모두가 잠든 한밤의 시간들을 보상이 전혀 없을지도 모를 일에 바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창작의 즐거움이라는 큰 보상이 있다. 이런 기쁨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즉 문학을 밥벌이나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 길에 들어서지 않는 것이 좋다. 성공의 확률이 너무, 너무 낮기 때문이다.
#.2
그동안 너무 도움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
첫 번째는 글 써서 먹고 살 생각은 하지 말라면서 글 쓰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성공 확률이 너무너무 낮은 직업군에서 (스스로 말하길) 로또 맞아 성공한 작가 김영하의 글이다. 두 번째는 벌써 대중의 기억 속에서 잊힌 서른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어느 시나리오 작가가 남긴 마지막 글이다.
차라리 그녀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긴 글과 죽음의 방식이 도저히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는 현재 영화계의 구조를 비판하는 글이었고 스스로 택한 죽음이었다면, 이 나라에서 창작활동을 하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직면한 절박한 환경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이었더라면 조금 덜 서글펐을 것 같다.
유서가 되어버린, 그녀가 이웃의 대문에 붙여놓았다던 이 메모 글은 그런 담론을 담아내기엔 턱 밑까지 차오른 현실이 너무도 버거웠을 그녀의 상황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그녀가 쓴 마지막 글은, 오로지 생존을 위한 글이었다. 그렇게 재능이 반짝이고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분야의 최고 명문을 나와 한동안 그 재능을 인정받고 일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 도시빈민이 되어 결국 아사하는 것으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현재 대한민국의 모든 창작 업계의 생리는 비슷하다. 안 팔릴 것 같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모든 창작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근데 이게 참 웃긴 게, 이게 잘 팔리는 상품일지 안 팔리는 상품일지는 까 봐야 아는 것이라서, 미리 이렇게 재단하고 기회를 박탈하는 시스템 구조 자체가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거다.
이게 딱 자본주의가 가진 아이러니의 핵심이다. 품질을 높이기 위해 경쟁을 붙였는데 결국엔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이 기준이 되어 모두가 그것을 획일적으로 쫓아가는 상황. 조폭 코미디 잘 팔릴 땐 너도 나도 조폭 시나리오, 츄러스가 잘 되면 골목마다 츄러스 가게 만들고, 뜬다는 동네 있으면 너도나도 그 골목으로 우르르 몰려가 골목상권 권리금 올리기에 자신도 모른 채 희생돼 건물주만 신바람 나게 만드는 상황.
또 이렇게 한 번에 같은 소비재들을 너무 생산하고 퍼부으니까 소비자들은 금방 질리기 마련이다. 그럼 또 우르르 문 닫고, 투자자들 사라지고. 이렇게 상품 전환의 주기가 한국만큼 빠른 나라가 또 있을까 싶다. (아 일본은 무슨 생긴 지 10년 넘은 과자도 6개월마다 패키지를 새롭게 만들어서 낸다고 하더라.)
그런데 결국 차별화한다고 해봐도 모양만 다르지 본질은 다 똑같다. 결국 가장 잘 팔리기 위한 것이라는 본질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자본주의 사회에서 전업작가로서 성공하는 일은 작가 김영하의 말대로 로또 맞기보다 어려운 일이 맞을 것이다. 때문에 전업작가로서 살아갈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면 잘 팔리는 글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잘 팔리는 작가들에게 신념이나 순수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욕하는 것도 어쩐지 마음 편하지 않다.
모든 가치 위에 먹고사니즘이 우선하는 시대에 정말 글쓰기를 유희적 활동으로 철저히 자신을 위해 기록할 수 있는 건 이런 당장의 아무런 대가를 받을 수 없지만 철저히 사람들에게 자신의 글이 단지 공유되는 기쁨만을 생각하며 글을 쓰는 익명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아는 이가 아무도 없지만 이곳에 며칠 동안 글을 올리며 정말 오랜만에 순수하게 글 쓰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자야 할 시간이다. 내가 이렇게 주말 동안 내 삶에 대한 기록을 글로 정리할 수 있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가지고 글 쓰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바로 내일 일을 하러 갈 나의 생업의 터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글을 쓰는 것만큼 나는 나의 밥벌이가 소중할 수밖에. 그 밥벌이에 누가 되지 않도록 이제 자러 가야겠다. 그리고 다음 주부터 다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실컷 써 보는 호사를 누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