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제도 탐험기 _ 프롤로그
나는 탐험가가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십일세기에 탐험이란 게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편에 가깝다. 비행기에서도 물속에서도 와이파이가 터지는 세상이다. 고립되고 싶어도 고립될 수 없고 미지의 세계에 가고 싶을 땐 구글맵을 켜면 그만이다. 그런 시대에 탐험이 웬 말인가.
하지만 나는 한 번쯤 탐험가가 되어보고 싶은 사람이다. 그렇다고 도시에 생업을 둔 내가 남극이나 북극으로 훌쩍 떠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리 숨겨진 여행지를 찾아 검색해본들 이미 너무 많은 정보가 쌓여 있어 선택 장애를 겪어야 하는 현실. 누구나 여행자의 명함을 갖고 전 세계를 소비할 수 있는 시대가 좋으면서도 싫었다.
페로제도엔 유명한 맛집도 꼭 사야 할 쇼핑리스트도 없다. 맘껏 소비할 수 있는 건 그저 망망대해 펼쳐진 대자연뿐이었다. 이 책은 여행을 좋아하는 두 사람이 지도에 나오지 않는 길을 걷고 또 걷고 뺨을 후려치는 섬 바람에 두 볼이 벌게지도록 야생동물의 똥을 밟으며 종일 트래킹을 했던 사적인 기록이다. 평범한 두 사람이 어쩌다 페로로 떠나 짧지만 강렬하게 ‘탐험가’의 기분을 맛보고 홀딱 반해버린 첫 경험에 대한 이야기.
굳이 ‘탐험기’라고 덧붙인 건 이곳에서 난 정말 ‘탐험가’가 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말해주고 싶었다. '탐험'이란 두 글자에 이끌려 이 글을 보고 있을 사람들, 일상의 대부분을 의자에 앉아 모니터와 마우스로 탐험하는 사람들, 익숙한 '여행지'보단 미지의 '탐험지'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당신도 이곳에선 ‘탐험가’가 될 수 있다고. 아직 순수함을 간직한 땅, 페로제도로 어서 떠나보라고!
페로 제도
노르웨이와 아이슬란드 중간쯤에 위치한 아주 오래전 바이킹들에게 처음 발견된 미지의 섬나라. 제주도보다 작은 이 섬에 오만 명의 사람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 2015년 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그래퍼가 뽑은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곳 1위로 선정되면서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융단 탐험대
20년 지기인 융과 단은 지금까지 34개국 121개 도시를 각자 또 함께 여행했다. 융은 낯선 길을 익숙하게 걷기, 단은 익숙한 길을 낯설게 걷기를 좋아한다. 융의 취미가 숨은 여행지를 찾는 거라면 단의 취미는 숨은 표를 찾는 것. 융이 지도에서 올해의 탐험지를 선정하면 단이 특가 티켓을 구해서 함께 떠난다. 이 책의 모든 글과 사진은 단, 일러스트는 융이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