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로제도 탐험기
서울에서 출발해 도쿄, 도하 찍고 스톡홀름에서 하룻밤을 잔 뒤 오늘 아침 코펜하겐을 거쳐 여기 왔다. 우리는 여섯 번의 기내식으로 빵빵해진 배를 안고 페로 공항에 드디어 도착했다. 좀 저렴한 티켓으로 빙~ 돌아온 것도 있지만 이 곳은 실제로 한국에서 먼 곳이었다. 그러니까 이건 마치 노르웨이 사람이 이틀에 걸쳐 울릉도쯤에 왔다고 생각하면 되려나. 공항을 나서자마자 교통 패스부터 구입했다. 이 패스 한 장이면 거의 모든 섬으로 가는 배와 버스를 무료로 탈 수 있다. 공항이 있는 보가르 섬에서 숙소가 있는 토르스하운(Torshavn)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차창 너머로 초록의 이끼로 뒤덮인 산들, 풀을 뜯는 양 떼들,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과 그보다 더 드문드문 보이는 사람들이 파노라마 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참 이상한 건 분명 실제 풍경을 보고 있는데도 여기 왔다는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는 거. 왠지 계속 윈도 바탕화면 속에 들어와 있는 것만 같고 티브이와 모니터로만 보던 대자연의 풍경을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도시에서 간접 경험에만 잔뜩 길들여져 있던 내 몸과 마음이 아직 이 대자연을 직접 만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헬로~ 헬로~ 여기 누구 없어요?
토르스하운에 도착한 우리는 버스 터미널 안내소를 두드렸다. 문은 굳게 잠겨 있다. 휴일도 아닌데 왜 닫혀 있을까? 여기에서 만나기로 한 집주인과도 연락이 안 된다. 마음은 마구 당황하지만 머리로는 침착하자를 외치고 있었다. 생각해봐, 모든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은 다 낯선 도시에 떨어진 첫날 일어났다고. 그러니까 침착하자.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도 보이지 않는다. 일단 저기 눈에 보이는 택시 서비스 센터로 가자. 내 손엔 집 주소가 있었지만 초행길에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갈 엄두가 안 났다.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택시를 타야 하나? 갔는데 집이 아예 없는 건 아닐까? 에어비엔비에서 아이디를 만들고 처음으로 결제한 숙소가 바로 페로의 이 집이다. 결제가 잘 못됐거나 사기를 당한 거면 어쩌지. 왜 전화를 받지 않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결국 택시를 타기로 했다. 주소를 보여주고 얼마냐고 물으니 75kr(만 원)를 부른다. 차로 분명 오 분 거리랬는데 이건 뭐 만 원 내고 경복궁에서 인사동가는 꼴이네. 정말 살인적인 물가. 그래도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곳은 도착하면 정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지도도 안내소도 표지판도 길 이름도 심지어 버스 정거장의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심술궂은 하늘과 거친 바람, 그 사이를 뚫고 걸어 다니는 몇몇의 사람들이 있을 뿐. 여행 내내 우리는 이름 없는 버스 정거장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탈 때 목적지를 미리 말해 두지 않으면 정거장의 이름이 없으니 이방인은 쉽게 내릴 수가 없다. 한국의 시골길을 생각하면 된다.
「페로제도 탐험기」 내용의 일부를 연재 중입니다. 페로제도의 탐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신 분들은 책으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