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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꾸녕 Apr 23. 2024

개 모시고 살기

개人적으로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는 라떼가 창문 흔들리는 소리 또는 바람이 부는 그 자체의 소리에 예민하게 겁을 먹고는 한다.

나름 9년이나 긴 견생을 살며 매일의 산책으로 많은 경험치를 쌓았을 텐데도 불구하고 혼자 있을 때 두려움을 느끼면 어딘가에 오줌을 갈겨 두기도 하고,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발 밑에 와서 묵직한 덩치를 기대고 엎드려 인간처럼 눈치를 살살 본다.

그래서 일기 예보를 미리 보고 비가 내릴 예정이거나 바람이 불 예정인 날에는 좀 더 산책 강도를 높게 해서 집에서 뻗어 잘 수 있도록 만들곤 하는데 그것은 라떼만 잠에 취해 뻗게 만들 요량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도 베개에 머리만 대면 깊은 잠에 들게 하는 탁월한 수면제를 먹는 활동이 되기도 한다.


 라떼와 아침과 밤에 산책을 하다가 지나가는 다른 강아지와 견주들을 보면 강아지와 견주가 서로 닮았다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라떼가 겁쟁이 같이 굴 때면 나와 라떼가 많이 닮은 것 같다고 인정하기도 한다.

운명처럼 겁쟁이끼리 매칭이 된 것일까 아니면 정말 우리가 같이 살면서 닮아온 것일까.


 태어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만났던 강아지가 노견이 되는 과정을 함께 하면서 요즘 우리의 마지막을 시시때때로 상상하게 되는데 이것 또한 나도 라떼처럼 겁쟁이라서 추후의 깊은 슬픔의 타격감을 미리 조금씩 느끼며 굳은살을 만들어 놓으려는 본능인 것 같다.

개들의 시간은 인간보다 빠르다 보니 라떼의 흰 털이 하루가 다르게 쇠는 게 눈에 보인다.

늘어가는 저 흰 털들의 수량은 나중에 내가 견주로서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의 무게와 비례한다.

문득문득 눈썹 털이 더 하얘졌다고 대놓고 느끼거나, 까맣던 콧수염 한두 개가 하얗게 되더니 최근에 마지막 남은 까만 털 하나까지 모두 하얗게 되어버리고 말았는데 요즘은 개를 키운다는 표현보다는 개를 모신다는 표현이 더욱 내 마음에 자연스러운 형상이다.


모쪼록 우리 라떼가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사료 잘 먹고 잠 잘 자고 똥오줌 잘 싸고 종종 미친개처럼 지랄 맞기도 하고 그렇게 평범하게.

나는 술을 끊는 것이 좋지만 개는 굳이 똥을 안 끊어도 된다. 잘 싸는 개가 행복한 개다.

내일도 피곤한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만들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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