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감나무가 키운 아이
나는 감나무 8그루가 둘러싸인 집 최가(家) 영자 섭자, 아버지의 막내딸이다.
회사로 출근하려면 신사역에 내려 300미터 정도 걸어야 했는데, 일부러 주택가 주변으로 산책하듯 걸었다. 아침마다 눈여겨봐 둔 감나무, 감꽃이 떨어지는 시기였다. 역시나 선물처럼 노란 감꽃이 담벼락 위에 떨어져 있었고, 두 개를 주워 사무실로 왔다. 직원들에게 이게 뭔지 아냐고 물어보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얼마나 귀한 순간인지 모른다.
“이거 몰라? 00 브랜드 신상 출시만 앞다퉈 sns에 담는 요즘 애들보다 이게 더 플렉스 FLEX 한 삶인데... 최애 하는 나의 힙스러움이지~“
멋쩍게 웃고는 내 자리로 돌아와 가져온 감꽃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사각모양의 감꽃. 어릴 때 보던 감꽃 모양 그대로였다. 하나를 집어 오래전 그 맛일지 입안에 넣었다. 먼데 하늘이 다가와 통유리 창에 그때의 풍경을 펼쳤다. 최신 트렌드를 다루는 월간 패션잡지사에서 감꽃의 향기와 알싸함 그리고 떱더름함이란... 부서별 늘어진 형광등 그리고 프린터 잉크냄새 가득한 너무나 대조적인 사무실을 말없이 둘러보았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감나무는 우리 집에 있었다.
정확히 여덟 나무. 종류도 좀 다양하게.
목수였던 아버지가 지은 집에 할아버지 할머니 3대가 함께 살았던 마당 넓은 집이었다. 감나무가 마당과 집을 둘러싼 담을 경계로 마치 호위병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위풍당당하게 우릴 지켜준 곳. 마당섶을 지나 15m 정도 가서 대문을 지나면 셰퍼드 한 마리가 있었고, 60미터쯤 마당섶을 따라가 보면 개울을 따라 가로로 쭈욱~ 커다란 미류나무 행렬이 펼쳐졌다.
마당섶 중간즈음에 아버지가 나는 나무의 사주를 타고났다며 호두나무를 심어주셨는데, 내가 원한 건 아니었다. 호두나무는 의미(불멸) 외에는 딱히 내 마음을 움직이진 못했다. 막내딸 어린 소녀가 보기엔 호두나무는 화려하지 않은 어른들이 좋아할 나무였다. 아버지의 정성(?)을 생각해서 '너는 어떤 나무니?' 라며 옆에서 머물곤 했었지만, 우린 둘 다 심드렁했다. 호두나무를 깨우느라 잎사귀를 뜯어 향기를 맡으면 정말 상콤 달콤한 향이 났는데 그건 너무 맘에 들었다. 그리고 호두를 수확할 때 아버지의 손이 시커멓게 물이 밴다는 것과 겨울에 까먹던 기억 그리고 요즘 종종 시를 쓴다고 할 때면 그 호두나무가 생각나곤 했었다. (시에 등장. 호두나무는 여기서 중략)
감나무는 계절마다 다양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특히 ‘감꽃’의 추억이 그랬다.
장대비가 오는 밤이면 파란 지붕 위로 우두두두 떨어지는 감꽃의 소리를 들었다.
'내일 아침 문을 열고 나가보면 감나무 아래로 연한 노랑의 감꽃이 눈처럼 소복이 쌓여 있을 거야'라는 기대는 어린 소녀를 잠 못 이루게 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딸이 매일매일 떨어진 감꽃을 관찰하는 걸 아시고는 “홍아~ 아침에 감꽃이 엄청 많이 떨어졌데이~“라며 때때로 재촉하기도 하셨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강아지풀을 뜯어와 감꽃을 주렁주렁 구슬처럼 꿰었다. 부잣집 금동이 마냥 스웩 넘치게 목걸이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면서 신나게 아이들과 소꿉놀이를 준비했다. 갓 떨어진 신선한 감꽃을 간식처럼 하나씩 빼먹기도 하면서.
종종 아버지가 “보석이 주렁주렁하네~ 우리 홍이 부자 다됐네~”하고 맞장구를 쳐주시면 새초롬하게 다가가 아껴둔 보석 같은 감꽃을 하나 빼서 아버지 입에 넣어드리곤 했다. 아버지는 "나도 주나?" 하시곤 원하는 바를 이루셨는지 허허 웃으셨다.
초록의 감을 잉태한 감나무의 미소, 감꽃.
감꽃이 떨어져야 초록의 감은 주홍빛으로 익어간다.
시간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대학교를 졸업 후 얼마 지나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결혼도 안 한 자식들은 각자의 일로 서울에 있었고, 늦가을엔 엄마 혼자서 감을 따기도 떨어지는 감과 수북한 낙엽을 치우는 것도 점차 힘든 일이 되었다.
결국 감나무도 모두 베어졌다. 나중에 그 소식을 사무실(야근)에서 통화로 전해 듣고, 아주 많이 슬퍼하였다. 그때의 감나무를 떠올리며 많은 눈물을 보탰다.
내 유년의 추억이 통째로 와락~ 쓰러진 것 같았다. 본가의 집도 허물고 엄마가 쓰기 편한 전원주택으로 다시 지었졌고, 감나무가 자라던 곳은 텃밭을 위한 비닐하우스로 상추와 대파가 자라고 있었다.
도시, 서울에서 그 감꽃이 피고 지고 떨어지는 그리고 주홍빛으로 익어가는 소리가 아주 깊은 곳에서 들렸다. 알 수 없는 미소와 함께.
[발행인의 첨언]
오늘의 글과 함께 이적 <숫자>라는 음악을 들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아래)
나 역시 그 시간을 감히, 세어 봅니다.
가사와 곡에서 가수의 호흡이 어휘(단어)를 정말 잘 살린 곡이라 그렇습니다.
글을 쓰는 단순한 이 행위가 노래가사만큼이라도 닮았으면~ 하는 바람인데, 아직 그 수준에 한참 모자라고 부끄럽지만, 이 마저도 안 한다면 더 나아질 것 없기에 감성을 보태고 의미를 함축하고 그렇습니다. 최소한 수준이 되려면 정말 부단해야 할 것 같아요.
부단해야 한다는 마음도 욕심이지만,
나는, 그 욕심이 너무 좋습니다. 어쩌겠어요?
영글려면 뙤약볕에 광합성을 많이 해야 할
욕심 많은 '잎'이 필요한 것을.
https://www.youtube.com/watch?v=1FY2tJ5lQmA
<롯데 ** > 공모전 출품 산문.
- 원제: 감나무가 키운 아이
- 2025년 작성하였다.
- 2026.4.9 수정첨언 브런치업로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