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 50분, 표정 없는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마음속에는 한 편의 시를 간직하고 사는 것 같은데, 평온하게 꺼내 읽지 못하고 사는 일상인 것 같아 숨 가쁘고 아프다. 마디마디 함축된 언어의 눈빛은 누구의 얼굴에서 미소 지을지 너무나 멀고 공허한 미래에 두고 온 듯하다. 사무엘 울만은 <청춘>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뜻한다고 했다. 장밋빛 볼, 붉은 입술, 유연한 무릎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활기찬 감정,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으로부터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한다고 했는데…. 오늘, 나의 하루 어디에도 그런 청춘의 표정은 없다. 마치 황금들녘에 누구의 바람대로 꽂혀 참새를 쫒는 허수아비처럼 그렇다.
공모전에 도전 중이다.
금요일 늦은 퇴근을 앞두고 친구에게 카톡으로 보여줬더니 안 팔릴 것 같단다. 이놈이 내가 대상을 탈까 봐 벌써부터 경계를 하나 싶어서 짜증 섞인 답장을 칼같이 날리려다가 커피를 삼켰다. 역시나 ‘안 팔리는 글’이라는 단어가 내 귀에서 지겹도록 무한반복되었다. 남들 다 팔리는 글을 쓰는데 나는 좀 안 팔리는 내 글을 쓰면 안 되는 거냐?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안 팔리는데 고생해서 힘들게 왜 쓰냐는 말을 미리 틀어막아 버릴 요량이었다. 설마 내가 스트라이크를 날리며 그 친구 놈의 할 말을 잃게 만들었는지 답장은 없었다.
평일엔 본업에 집중하고 주말엔 글을 썼다. 지겹도록 지치도록. 어제는 집구석을 둘러보니 서재에도 침대에도 온통 휴지가 하얀 누에고치처럼 동글동글 말려 있었다. 팔리지도 않는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부터 떨어지는 면역이었다. 홈페이지 리뉴얼을 끝내놓고 며칠을 쉬었는데도 몸의 회복이 더뎠는데 조심해야 했다. 아프다, 아팠다는 말은 정말 유쾌하지 않은 말이지만 이번에도 3일 동안은 그냥 버티다가 안될 것 같아서 병원에 갔다. 첫날은 오한으로 덜덜 떨었고, 평소 감기 이상의 증상을 보이고 고열에 시달렸기에 병원을 갔는데 의사가 테스트를 해보자고 했다. 설마 내가 2025년에 다시 유행한다는 그 코로나에 걸릴 줄은 몰랐다. 자가진단이 아닌 의사의 진단이 그랬다.
걱정은 되는 모양인지 아니면 양약으로는 뿌리를 뽑지 못할 것 같아서인지 약국에서 최고 비싼 우황청심환을 함께 먹고 잠이 들었다. 다시 잠이 들었다. 또 잠이 들었다. 약을 먹기 위해 식사를 해야 했는데 그때만 깨어있었던 것 같다. 이것이 격리구나. 사람에게서 세상에게서... 코에서 비릿한 냄새가 동반되었다. 나는 생선이 되어가고 있나 보다. 공모전이란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물속에 수장되어 나 혼자 민물인지 바닷물인지도 구별 못하는 상태로 말이다. 그래도 기분은 뭐 나쁘지 않았다. 몸이 조금 골골댈 뿐 팔리지 않을 글을 쓴다는 것도 약간은 즐거웠고, 그런 글은 모조리 내가 다 써 재낄 요량이었다. 사실, 그게 더 스릴 있고 궁금한 미래이기도 하니까.
나는 지금 풍선을 잡고 있다.
약기운이 사라질 무렵 언짢게 잠들었고 웃으며 깼다. 계속 자긴 아까운 주말 토요일이라 에어팟을 끼고 터벅터벅 불광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유니폼을 서로 맞춘 자전거 동호회 무리가 몇 차례 지나갔다. 쉬라고 있는 주말도 다들 기를 쓰고 몸을 쓰며 바쁜 토요일 저녁을 보내고 있었다. 마침 저녁 타임 분수쇼를 하고 있어서 적당한 계단에 앉아 입력된 프로그램 대로 춤추는 분수쇼를 구경했다. 넋 놓고 보고 있으니 마치 신장개업식 행사장에서 풍선에 둘러싸인 펄럭이던 대형 허수아비 인형 같았다. 마땅히 구경거리가 없는 서울 변두리동네에선 그나마 랜드마크라고 가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나와서 분수쇼를 보기도 하면서 주말저녁을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나 같은 사람도 오늘 그 대열에 있었다.
이 시기,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계절은 내가 고를 바람이 많았는데 정비되지 않는 불광천의 물비린내와 물찌꺼기 같은 안 좋은 냄새도 함께 있었다는 게 쫌....
그때였을까 풍선하나가 바람을 타고 내가 앉은 계단 쪽으로 오고 있었다. 서둘러 잡지 않으면 불광천 물 위로 떨어질 것 같아서 허둥지둥 풍선에 매달린 끈을 잡았다. 참 오랜만에 소꿉놀이 같은 풍선을 손에 들고 보니 7살 소녀로 돌아간 것 같아 웃었다. 풍선을 들고 있는 나 같은 어른을 어떻게 보았을까? 주변을 의식 조차 하지 않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풍선끈을 잡고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불광천 분수쇼를 라스베이거스 - 벨라지오 호텔 분수쇼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것이었다. 곧 풍선주인이 오면 인계될, 길에서 주운 풍선에게 적당한 수준이기도 했다.
‘풍선아, 너는 누군가가 잡아주길 원한 거니? 잡고 있는 이 끈을 놓아주면 너는 자유인데, 내가 너를 잡고 있어서? 만약 내가 귀찮아서 너를 놓으면 너는 차가운 대기권으로 날아가서 결국 뻥~ 하고 터지는 거야. 그럼 이건 어때? 내가 아껴둔 날카로운 손톱으로 너를 터트릴 수 있는데, 다시는 부풀지 않도록. 원하면 그렇게 해줄 수 있어. 너의 선택을 돕기 위해 알려주는 거야. 하지만 이 칠흑 같은 서울 변두리 어둠속에선 맡겨진 최선일수도?
조심스럽게 풍선을 쓰담쓰담하는데 뽀득뽀득 뽀드득 앓는 소리를 냈다.
웃기는 녀석이네.
타인에 의해 부풀려졌으면서...
한참을 있어도 풍선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하다못해 아이를 키우는 엄마와 꼬맹이가 나타나 풍선을 찾을 줄 알았다. 그런데 분수쇼가 끝나고 내가 돌아갈 늦은 밤 11시 찬기운이 몰려올 때까지도 풍선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웃음 띤 얼굴로 부풀어 놓고 쓰래기를 만들고 가버린 듯했다.
'너도 허수아비 구나.’ 영문을 모르고 나풀거리는 풍선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어쩔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풍선 끝에 매달린 실을 꼭 잡고 불광천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과 도로로 이어지는 횡단보도를 건너, 고깃집 석쇠 주변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집으로 왔다. 어릴 때 만취한 아버지가 삼천리 자전거 손잡이에 새끼줄로 대롱대롱 묶어오신 간고등어 한 손처럼 말이다.
코를 풀어댄 휴지가 누에고치처럼 돌돌 말아 누워있는 집구석에 딱히 어울릴 곳이 없어서 사시사철 집안 인테리어 소품으로 있는 통유리 옆 크리스마스 트리에 풍선을 묶어놓았다. 풍선은 종일 나부낀 탓에 지쳐잠든 것 같았다. 내일 아침에 깨면 주인이 자기를 버리고 갔다는 것을 눈치챌 것 같았다.
잠든 풍선을 바라보며 행사장 허수아비처럼 서있었다.
[발행인의 첨언]
도시에 사는 <허수아비(인간들)>와 <버려진 길고양이 같은 길풍선>을 통해 누군가에게 안착하고 싶거나, 떠나지 못하거나, 전달되지 못한 마음으로 공중분해되거나 하는 풍선(누군가에 의해 부풀려진 꿈)을 은유적으로 써본 글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허수아비> 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손에서 놓아버린, 한때 따뜻한 입김으로 부풀려진 <풍선> 일 수도 있습니다.
2025. 9월에 쓴 <롯데 샤> 공모전 수필 부분 출품작
2026. 4. 22 많이 수정첨언 하였다.
** 다소 도입부 러닝타임이 긴데, 원고를 대폭 다시 수정해야할듯 합니다. 많이 수정했는데도 아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