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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gsungg labnote Nov 28. 2024

홍성_랩노트는 개인적인 글을 씁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1)

10년 전까지만 해도 대중들에게 노출된 컨텐츠를 대다수가 좋아했다. 사람들은 제한된 채널의 TV와 라디오 채널, 적은 수의 신문사에서 제공하는 컨텐츠를 누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두들 같은 컨텐츠에 대한 얘기를 했다. 10년 전만 해도 대한민국을 휩쓴 히트송, 드라마, 연예인이 있었다. 그리고 옛날 드라마의 50%가 넘어가는 시청률이나 예전 음악방송의 5주 연속 1등 같은 기록들은 그 당시의 대세 컨텐츠들이 국민적인 호감을 가졌다는 증거이다.


반면 요즘은 모두들 전반적으로 좋아하는 컨텐츠가 거의 없다. 예를 들어, 임영웅, 방탄소년단, 아이브는 국민적인 호감 스타들이다. 하지만 청년층은 임영웅이 부모님과 조부모님이 좋아하는 가수라고만 알고 있다. 많은 남성들은 방탄소년단이 글로벌한 스타라고만 알고 있다. 부모 세대는 아이브가 초등학생 딸이 좋아하는 가수라고 알고 있다. 각각의 집단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스타라는 지위가 이제는 거의 없다. 인터넷과 추천 알고리즘의 발전으로 각자는 각자가 좋아하는 컨텐츠만을 즐길 수 있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SNS는 내가 보고 싶어하는 영상을 맞춤으로 추천한다. 나는 음악 채널을 자주 듣기 때문에 딩고 킬링 보이스. 음악방송 무대모음. 코딩할 때 듣기 좋은 노래 5시간. 이런 영상들이 자주 추천된다. 반면에 요즘 유행한다는 숏폼 코미디 콩트 (숏박스, 피식대학 등등)는 자주 보지 않기 때문에 잘 추천되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한테는 숏폼 코미디는 백날 추천해 봐도 한번 클릭할까 말까 한다. 그 컨텐츠가 아무리 메인스트림이더라도 특정 소비자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면 그 소비자에게 그 컨텐츠는 그냥 쓸 데 없을 뿐이다. 모두가 좋아하는 컨텐츠를 만들 수는 없다. 


https://youtu.be/BeViKGzUgyI?si=M4cAgBm6Aax5Xzwq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김수영의 공연 영상


취향을 존중하고, 다양성을 이해한다. 트렌드는 약해지고, 여론은 사라졌다.



이전에는 주류 컨텐츠가 아닌 비주류 컨텐츠를 좋아했을 때, 나의 이 덕질에 같이 공감하고 동참해줄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 덕질의 불꽃은 계속 불타오르지 못하고 스르르 꺼져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SNS의 발달로, 물리적으로 나와 가까운 곳이 아닌, 인터넷에서 같은 컨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가 쉬워졌다. 트위터, 인스타, 유튜브, 온라인 카페에서 컨텐츠에 대한 정보를 서로 온라인으로 공유하는 일은 너무 흔한 일이다. 각종 동호회 어플들을 통해서 오프라인으로 예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기도 하고, 러닝크루로 운동을 같이 할 수도 있다. 


다양한 컨텐츠를 좋아하는 집단들이 확연히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컨텐츠의 팬클럽이 있다. 앞서 말한 온오프라인 미디어로 교류를 하는 크고 활성화된 팬클럽은 당연히 눈에 잘 띈다. 작은 팬클럽이더라도 열성적으로 좋아하고 있는 팬클럽이 분명히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오컬트 마니아들은 쓰레기같은 인형을 1000 만원 주고 구매하기도 한다. 또한 본인은 집단이라고 느끼지 못하더라도 그 집단에 속해있을 수도 있다. 구독도 하고 있지 않은 유튜브 채널을 오래 보는 사람도, 일상 중 시간이 조금씩 날때마다 게임을 켜는 사람도 모두 컨텐츠를 즐기고 있는 숨은 팬인 것이다. 그 유튜브의 댓글창이나 게임의 랭킹순위에서 본인과 같은 컨텐츠를 즐기고 있는 또 다른 팬들을 만날 수 있다.


끼리끼리 뭉쳐서 끼리끼리만 아는 얘기를 한다. 브랜드, 미디어, 컨텐츠 제작자들은 끼리끼리를 타게팅하는 전략을 수립한다. 나는 손목시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손목시계 공부를 조금이라도 한 사람들은

5만 원짜리와 500만 원짜리를 귀신같이 구분한다. 톱니가 어떻고. 프랑스장인이 어떻고. 브랜드는 시계에 대해 아는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마케팅한다. 그리고 시계를 잘 아는 소비자들은 또 가치를 알아보고 시계에 500만 원을 지불한다. 그 끼리끼리가 모여서 팬이 된다.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일 테고, 안티도 생긴다. 모든 사람들이 그 컨텐츠를 좋아할 수는 없다.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 사람들까지 포함시킬 생각 말고. 지금 컨텐츠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한다. 500만 원짜리 손목시계를 보고서 누군가는 그 가치를 모르고 지나갈 수도. 시계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라며 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브랜드는 그 가치를 아는 팬들에게 집중하고. 팬들이 원하는 제품을 생산하면 된다.


브랜드는 그 브랜드만의 정체성과 개성이 있어야 한다. 컨텐츠에 차별점이 없다면 팬들은 또 다른 컨텐츠로 금방 넘어가버린다. 브랜드는 그 브랜드만이 할 수 있는 컨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더 좋은 만족을 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대체제가 있는데 굳이 그 브랜드의 컨텐츠를 소비해야 할까? 이런 컨텐츠는 여기서 밖에 얻을 수가 없어야 한다. 명품 시계 브랜드가 많고 많지만 이 브랜드만의 특별한 뭔가가 있어야 한다.




유재석과 조세호의 유퀴즈를 즐겨 본다. 유퀴즈는 그 분야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카이스트 교수님. 소녀시대. 히트상품 제작 회사원. 등등 업계에서 나름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한다. 초창기 포맷에는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났는데 지금 포맷도 다양한 분야의 사람을 만날 수 있어 괜찮다. 뇌과학자 교수님이 말하는 사랑의 유효기간. 소녀시대가 말하는 해외투어 비하인드. 히트상품을 만들기 전까지 실패한 상품들. 경험과 지식을 지닌 전문가를 국민 엠씨가 유쾌하게 인터뷰한다.


유퀴즈 인터뷰는 거의 비슷한 형식이다. 저 "여기 자리"까지 오기까지 "이런 일"이 힘들었어요.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까 "이 에피소드"도 웃으면서 얘기하네요. 지금은 "이런 재밌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앞으로도 계속 나아가야죠. 각각의 인터뷰는 여기 자리, 이런 일, 이 에피소드, 이런 재밌는 일 항목에 들어가는 이야기가 다르다. 유퀴즈의 각양각색의 생생한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그 인물이 어떻게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했는지에 대한 에 대한 얘기이다. 유퀴즈의 모든 인터뷰는 본인의 직접 경험이라서 생생하고 진실성이 있다. 가끔씩 학자가 나와서 어떤 주제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거나, 최근의 유명한 에피소드만 얘기하는 회차는 그다지 재미가 없다. 그들의 이야기가 아니거나, 단편적인 면만 보여주기 때문이다.


https://youtu.be/P4VDr1e4Wlg?si=ICsiPDeQxSm-6Rat

마음에 울림이 있던 유퀴즈 최근편


'자취남'이라는 유튜브 채널도 좋아한다. 자취남은 더욱더 보통 사람들의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집을 소개한다. 30 편 정도 영상을 봤을 때는 각각의 집에서 살림 꿀팁을 얻었다. 신발장에 두면 좋은 탈취제. 집을 구할 때 꼭 따져야 할 조건. 30 편 이상의 영상을 시청했을 즈음에 꿀팁은 충분했다. 지금은 다른 재미 자취남의 영상을 계속 시청한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소중해서 집을 아기자기하게 꾸민 사람. 식물을 키우는 취미생활로 돈 버는 사람. 일-운동-일-운동 루트만 반복하는 사람. 방 하나하나를 각기 다른 취미 방으로 풀세팅한 사람. 사람들 모두가 각자의 취향대로 살고 있는 모습 자체가 재밌어서 구경하고 있다. 집주인은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취미를 말할 때 가장 신나고 하이 텐션이며 구체적이고 TMI를 남발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자취남의 인터뷰도 거의 비슷한 형식이다. 저는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서 "이런 꿀팁"을 하나 소개해드릴게요. "이런 취미"에 진심이라서 우리 집에는 "이런 아이템"이 많고요. 그 덕분에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습니다. 인생은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각각의 인터뷰는 이 인물이 어떻게 즐거움을 찾아서 하루하루를 살아내는지에 대한 얘기이다. 사람들은 모두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지. 재미없는 일을 하고 싶지 않다.


https://youtu.be/obM8JHOEL-A?si=3TGUd3uGPWQqriFq

좋아하는 자취남 영상 중 하나


개인적인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과 큰 맥락에서는 공통적이기 때문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왜냐하면 대부분 행복하지고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절이나 교회의 소원초를 보면 건강 재물 명예 가족 사랑 이런 똑같은 이야기만 적혀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아니다. 제각기 다른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소원초에 깨알 글씨로 전부 다 각자의 사정을 써낼 수가 없으니 비슷해 보일 뿐이다. 우리 각자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풀어내면 경로는 모두 다르지만 소원초에 적어내면 행복하자는 동일한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래서 honggsungg_labnote. 홍성랩노트라는 브랜드는 무슨 컨텐츠를 제작하고, 무슨 글을 써야할까? 우선 지금까지 작성했던 글을 돌아봤다. 1) 인스타 계정을 운영하던 초반에는 간단하게 논문을 요약하면서 생명과학 논문에 대한 지식을 제공했다. 지금은 내가 읽는 논문이 내 연구 주제와 깊게 연관되는 것 같아서 이 쪽은 덜 하고 있다. 2) 여러 과학문화 컨텐츠에 대한 리뷰나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 주제는 지금도 과학도서나, 과학영화 등을 리뷰하는 컨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3) 요즘은 연구와 대학원에 관한 에세이들을 주로 쓰고 있다. 브런치에는 이렇게 긴 글을 쓰고있고, 인스타에는 하루하루의 연구 성취나 연구 일상을 기록한다.


인스타그램에서 내가 팔로우하고 있는 계정들을 둘러보니까. 거의 전업 과학커뮤니케이터로 컨텐츠를 생산하시는 분들. 나처럼 대학원 생활을 기록하는 분들. 대학원이 아니더라도 공스타그램 하는 분들. 논문 읽고 기록하시는 분들. 수학과학 지식을 나누는 분들. 과학 유머를 생산하는 분들. 만화로 과학을 표현하시는 분들이 있었다. 다들 눈길이 가고 재미있는 컨텐츠였다. 그런 분들 중에서 3년 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게시글을 업로드하는 분들은 드물었다. 다들 현업이 있는데도 컨텐츠를 지속해서 생산하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나 또한 계속 글을 작성하는 일이 쉽지가 않다. 밤 늦게 퇴근해서 운동하고 집에 돌아오면 다시 또 자야할 시간이라 새로운 컨텐츠를 만들 시간이 부족하다. 나는 내 컨텐츠의 지속성을 위해서 내 대학원 일상 공유와 연구에 대한 생각들을 주로 작성했다.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하는 컨텐츠가 그 질적인 측면에서 좋을 수도 있다. "이거 안 하면 논문을 잘못 읽고 있다?" "어떻게 하면 서울대 대학원에 입학하는 방법 4가지!" "이렇게 했더니 미팅에서 특급 칭찬 받았다고~" "클로닝 트러블 슈팅하는데 이 3가지 해봤어?" "단백질 분석하는데도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다고?" 이런 종류의 컨텐츠가 블로그나 인스타에서 자주 보이고, 나도 자주 클릭한다. 실제로 좋은 정보들을 많이 얻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전문적인 정보 전달 컨텐츠를 따로 제작할 시간이 별로 없다. 그리고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전문 정보들을 잘 전달해준다. 굳이 SNS에서 내가 지식 제공 컨텐츠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전에 논문제출자격시험 발표를 망쳐서 아쉬워하는 글을 인스타에 썼다. 그리고 그 글이 나의 인스타 게시물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시글이었다. 아마도 좋아요를 누르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발표를 망친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다들 그런 경험이 있거나. 주위에서 비슷한 얘기를 들어서 공감하는 의미였을 것이다. 내가 인스타에서 좋아하는 게시글도 이런 종류다. “유전자를 발현시키기 위해서는 이 조건을 유의해야 한다.”라는 글보다는 “전까지는 계속 실패하던 유전자 발현  실험이 성공해서 기쁘다.”라는 이야기가 끌리고. “논문은 서론 방법 결과 토의 순서로 이뤄집니다.”라는 인포그래픽보다는 “다 마신 커피잔과 쓰고 있는 논문이 보이며 집에 가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진이 끌린다. 개인적인 이야기는 구체적이며 생생하다. 구체적일수록 감정에 이입하기 쉽다.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대충 다 아는 얘기라서 흥미롭지 않아 한다. 그래서 보편적인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 할 수 있고, 내가 꾸준히 할 수 있고, 내가 구체적일 수 있고, 나만이 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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