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연구를 해보자
박사 6년차에 열심히 연구를 해보자는 마음가짐은 쉬이 찾아오지 않는다. 이 마음가짐이 나에게 찾아온 경위를 공유하고, 이 마음가짐이 도망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일기를 쓴다.
첫번째 이벤트. 서류 더미에 파묻히다.
4월 말까지는 연차보고서를 작성했고, 5월 초까지는 연구제안서를 작성했고, 5월 중순인 지금은 장학금 지원서를 작성하는 중이다. 한글파일, 일러스트레이터, PPT 등 서류 작업에 파묻혀 지내는 요즘이다. 가끔은 안전관리보고서나, 직간접비 사용내역서 같이 귀찮고 행정적인 서류작업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요즘 작업하고 있는 서류들은 연구비 선정에 연관되는, 연구적이고 과학적인 서류들이다.
연구제안서는 앞으로 n년 간 어떤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연구비를 요청하는 서류이다. 이 연구가 얼마나 중요한 연구인지, 이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무슨 무슨 계획이 있는지, 본 연구실이 이 연구를 얼마나 잘 수행할 수 있는지, 지원받는 연구비가 본 연구를 수행하기에 적정한지 등에 대해 작성한다. 연차보고서는 지난 1년 간 어떤 연구를 수행했는지, 연구비 지급처에 보고하는 서류이다. 꾸준히 연구를 잘 하고 있는지, 다음 1년은 무슨 연구를 할 것인지, 필요한 실험 기자재는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작성한다. 장학금 지원서는 연구제안서의 작은 버전이다. 연구실 단위가 아닌, 박사과정생 단위에서 연구를 하기 위한 연구비 및 인건비를 요청하는 서류이다. 연구의 필요성, 추진 전략 등을 작성한다. 추가로 박사과정생이 얼마나 학생으로서 우수하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서도 작성한다.
저년차 때에는 연차보고서와 연구제안서를 쓰지 못 했다. 교수님께서 봤을 때, 내가 작성한 글은 아주 그냥 엉망진창이기 때문이다. 내가 쓰고 싶다고 졸라서 한 페이지를 간신히 써가면, 바로 리젝이었다. 과거의 내가 작성했던 서류를 지금 다시 보면, 왜 교수님이 리젝했는지 충분히 납득할만한 쓰레기같은 문장들이다. 나 자체가 연구의 개념이 머리에 확실히 잡혀 있지 않고, 지식이 부족하니 제안서의 논리적 빈틈이 너무 많고, 공식적이거나 학술적인 어투의 문장이 아니었다. 그래도 저년차 때부터 연구제안서를 쓰고 싶다고 열심히 어필을 한 덕분에 지금에서야 내가 리드하며 연구제안서를 쓸 기회가 생겼다. 일반쓰레기 문장을 썼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분리수거 정도는 할 수 있는 문장을 쓰고 있다. 교수님께서 이번 제안서를 보고, 많이 수정하시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폐기 후 재작성"이 아니라 "수정"이라는 데 큰 의의가 있었다.
지난 몇 주간 이 서류들을 작성하면서 이 연구실에서 내가 수행했던 일들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선, 선행 연구 부분에 내가 했던 데이터를 이해하기 쉽게 배치하고 시각화했다. 이 피겨를 만들면서 1년 동안 아무것도 안 한 줄 알았는데, 그래도 쓸만한 데이터도 조금 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연구의 필요성 부분을 작성하다보니까, 내 논문의 인트로도 이렇게 작성하면 되겠다는 감도 잡혔다. 특히 장학금 지원서가 큰 역할을 했다. 지금 지원하는 장학금 지원서는 학생이 어떤 연구를 진행할 것인지 자세히 서술해야 한다. 그래서 이 지원서에는 내가 하려는 연구를 작성하고 있다. 교수님이 지시하는 연구가 아니라, 내가 연구실에서 공부하면서 하고 싶은 연구를 작성하고 있다. 장학금 지원서를 쓰면서 나 스스로 이 연구가 되게 재미있겠다고 느꼈다. 지금 작성하고 있는 연구는 내가 궁금해하면서, 내가 충분히 분석할 수 있을만한 규모의 연구이다. 역량, 포부, 진로 등의 부분에서도 대학원 생활 전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봤다. 그래. 전문성을 가지기 위해 나는 대학원에 진학했지. 연구 서류의 문장들을 작성하면서 흘러가버린 과거의 나와 막연한 미래의 나를 가시화하는 기회가 되었다.
이상한 사람 같겠지만, 나는 연구 서류들의 마감일자에 허우적거리고 있어서 좋다. 우리 교수님은 논문을 하염없이 계속 쓰고, 분석하고, 수정하고, 다시 쓰기를 반복한다. 마감일자 없이 더 나은 퀄리티가 나올 때까지 계속 일을 한다. 나는 끝이 없는 이 논문 작업에 너무도 지쳐버렸다. 예전에 러닝 관련 글을 작성하면서 교수님의 끝없는 작업 방식에 지쳐버렸다고도 언급했다. 하지만 연차보고서, 연구제안서, 장학금 지원서 모두 정해진 마감 일자가 있다. 즉, 끝이 있다. 끝날 때까지 최대한의 퀄리티로 서류를 작성하지만, 더 좋은 퀄리티가 나올 때 까지 무기한으로 수정하지 않는다. 교수님이 더 작성하고 싶어도 작성할 수 없다!
바쁜 것도 좋았다. 뭔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 나는 절대 나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수행하는 사람이 못 된다. 그래서 혼자 있는 집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고 항상 늘어져있다. 다른 사람이 있는 카페에 나서서 독서를 하거나, 연구실에서 논문 워드 작업을 한다. 이번 제안서는 내가 리드를 했기 때문에, 같이 작성을 하는 팀원들이 있었다. 팀원들과 같이 회의하고, 피드백하고, 수정하는 그 모든 과정이 나에게 활력을 불어넣었다. 나에게는 다같이 으쌰으쌰하는 경험이 필요했던 것 같다.
두번째 이벤트. 교수 공채 세미나에서 충격을 받았다.
이번주는 학부의 신임교수님을 선발하는 교수공채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우리 학부의 교수공채세미나는 국내외의 포스트닥터 연구자들이 본인이 지금까지 해왔던 연구를 40분 정도 발표하고, 교수로서 독립연구자가 되면 연구할 내용과,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과목을 20분간 말한다. 그리고 이 세미나는 기존 교수님들 뿐 아니라,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모두 참석 가능하다. 내 연구 말고 남의 연구를 좋아하는 대학원생인 나는 교수공채세미나에 자주 참석한다.
두 명의 교수공채세미나에 참가해서 세미나를 들었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두 명이 학부 11학번과 학부 12학번이라는 점이었다. 학부 15학번인 나는 11, 12학번 선배들과 같이 동아리를 하기도 해서 11, 12학번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았고, 실제로 그들은 나보다 겨우 3-4살 많은 형, 누나이다. 아니, 나랑 형, 누나 하는 나이의 사람들이 교수가 되려고 한다는 게 너무 충격이었다. 최근에 교수로 임용된 분들의 나이를 찾아보니까, 34-36살에 임용되신 분들도 있었다. 당장 올해 새로 오신 옆방 교수님도 나보다 겨우 6살 많다. 서른 중반의 교수직이라니... 교수와 나 사이의 나이 차이가 대학원 신입생과 나 사이의 나이 차이보다 더 작다. 나는 이제 대학생보다 교수에 더 가까운 나이의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들이 뛰어난 구루 아래에서 포닥을 거치고, 그 지도 중에 대단한 논문을 게재하고, 덕분에 삼십 중반의 빠른 임용, 서울대 교수라는 안정적인 직장에 부러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감정보다는 그들 자체가 멋있어보인다는 긍정적인 감탄이 더 컸다. 나는 학교에서 외부 교수님들이 하시는 세미나에 자주 참석해도, 그들의 연구가 대단해보였지, 교수님 자체는 그다지 멋있어보이지 않았다. 세미나 전에 외부 교수님들과 우리 학부 교수님들이 스몰토크를 하는 걸 보면서, 교수님들에게는 연구가 일상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세미나 중에도 연구 발표가 그다지 긴장되지 않고, 편안하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번 교수공채세미나에서 발표하는 그들은 확실히 긴장감이 있었다. 그들에게 이 세미나는 교수로 임용되느냐 포닥으로 남느냐의 기로에 서는 중대한 자리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기성 교수들보다는 세미나 경험도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미나용 포멀룩으로 갑옷을 갖춰입고, 전쟁터에 나오는 병사들처럼 긴장감에 둘러싸인 듯 했다. 그들의 긴장감은 그들을 위축시키기보다는 자신감 부스터로 작용해보였다. "나는 대단한 연구를 했고, 이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고, 나는 전문가야." 라는 모습이 확실히 보였다. 그들의 1시간 가량의 세미나에서 계속 그 긴장과 어우러진 자신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그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내가 앞으로 되고 싶은 모습이 저런 이미지구나. 경험과 노력과 지식이 뒷받침되고, 긴장감과 자신감으로 둘러싸인 채, 수많은 연습으로 물 흐르듯이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고급스러운 전문가. 내 브런치의 첫 문장으로 써놓은 나의 꿈인 교양있는 현대 지식인. 그런 전문 지식인이 그리 멀지 않은 현실에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나보다 겨우 3-4살 많은 사람이지만 그들은 대학원생의 태도에서 이미 진즉에 벗어나보였다.
대학원생은 대학원생 나름의 태도가 있고, 박사는 박사 나름의 태도가 있고, 교수는 교수 나름의 태도가 있다. 대학원생는 지도교수에게서 배우려 하고, 본인의 결정에 의심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하고 조급해한다. 박사는 자기주도적으로 성과를 내려하며, 본인의 연구에 자신감이 있(는 척 한)다. 교수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연구를 대하고, 본인과 학생의 성장을 목표로 한다. 실험이 망했다고 찡찡대는 건 대학원생의 태도이다. 이제 그만 찡찡대고 실패한 실험을 성공할 때까지 시도하는 박사의 태도를 가지자.
자신감을 가지자. 전문가의 오오라를 갖추자. 열심히 연구를 해보자.
(하지만 학계에는 절대 안 남을 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