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련 -1
아무도 듣지 않고 보려 하지도 않아.
슬픈지 기쁜지 관심조차 없지.
이 노랫소리도 혼자 쏟는 메아리.
어떻게 하면 내 말이 전해질까.
장화홍련전.
계모의 학대로 죽은 자매가 귀신이 되어 사또에게 찾아가 한을 푸는 이야기.
언니인 장화는 살해당하고, 동생 홍련은 언니를 따라 목을 매는 선택을 한다.
학대 피해자들이
죽어서야 한을 푸는 이야기.
살면서 오랜 시간 학대를 당한 장화와 홍련의 이야기는 왜 죽어서야 알려지게 되었을까?
이승과 저승 사이, 천도정이라는 재판장에 도착한 홍련은 그곳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애원한다.
죽고 나서도 애원한다.
왜 죽어야 그 심각성이 전해질까?
죽기 전에, 죽기만큼 괴로워도 아직 살아있을 때, 아직 구할 수 있을 때에는 왜 전해지지 않을까?
뮤지컬 홍련은 이 부분에 있어 명확히 분노하고, 화내고, 소리 지른다.
가부장제 아래, 폐쇄적인 규중 아래, 아프고 힘들었던 장화와 홍련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를 표현한다.
모르는 이들에게 심각성을 설명하기 위해, 이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리기 위해,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너무 아프지 않기 위해.
아프지 말라고 온몸으로 소리치며 우는 작품이다. 울고 소리쳐서 생존하는, 생존했던 이들의 외침이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똑바로 보고, 처벌하고, 늦기 전에 구해낼 것을 말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잘 모른다. 어느 정도는 알았지만, 아직도 헷갈린다.
가정폭력이 없는 집이 어떤지, 내가 얼마나 심각했던 상황인지, 내 상황이 많이 나빴었는지 잘 모른다.
그건 내가 가정폭력이 없는 상황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나도, 어떻게 버텨서 27살이 된 이제야 독립하고 절연해서 이제야 멀어졌지만.
여전히 나는 사랑이 있는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잘 모른다.
그럼에도 홍련을 보면서 알 수 있었던 건 내가 아프고 힘들었던 게, 당연히 분노할 일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심각했던 상황이 맞고, 내가 힘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맞았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내 탓이 아니었다.
홍련은 피해자의 편에서, 피해자가 자신을 탓하지 않기를 바라는 작품이다.
모든 배우가 매 회차마다 눈물을 수도 없이 흘리는 작품이다.
그래서 피해자의 입장에서, 홍련이라는 작품이 어떻게 나를 치유해 주었는지, 씻겨주었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