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ANNE
내겐 어디로 뻗어나갈지 모르는 수많은 길이 있어요. 그저 용기 내 선택하기만 하면 돼요.
-뮤지컬 앤ANNE 중-
와, 진짜 용기 있다.
내가 사랑하는 배우가 연기하는 앤을 통해 들었을 때 처음 했던 생각이다.
나는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 옆에도, 길 끝에도, 내 바로 뒤에도 절벽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았기 때문일까.
내 주위의 절벽을 미리 상상하던 나에게 앤은 너무나 용기 있어 보였다.
어렸을 때의 나는 좋아하는 것도 많고 심장이 뛰는 일도 많은 아이였다. 지금도 그래서 다행이지만.
뭐든 잘 참고 따라가는 아이였기 때문일까? 어린 나에게는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볼 기회가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없다고 제한된 순간부터, 나는 허용된 울타리 안에서 “그나마” 나은 것을 골랐다.
할 수 있는 일 안에서 그나마 잘하는 것을 골라 그나마 있는 열정을 소진시켰다. 그리고 달렸다.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면 내가 전에 달려온 길은 모퉁이에 가려져 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 길들은 다 사라졌고, 다 무너져 절벽이 된 거라고 생각했다.
돌아갈 수가 없어서 앞만 보았다. 더 열심히, 더 빠르게 달렸다.
힘들다는 생각이 가득 찼을 때에도, 내 몸은 계속 앞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멈출 수도 없어 더 급하게 그나마 좋아 보이는 걸 골랐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던, 좋아하는 것들은 늘 마음 저편에 미뤄진 채 나는 그나마 나은 길을 달려 나가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누군가는 그것도 내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그나마 나은 길이 오히려 현명하고 안정적인 길일 수도 있다.
다만, 나는 이 방법이 맞지 않았고, 결국 나 자신을 소진시켰다.
그 길에서 나는 원동력을 만드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소진된 나를 끌어안고 다시 달려갈 힘이 없었다. 다 소진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멈춰서 한참을 울었다.
뒤를 돌아보자 내가 전에 돌았던 모퉁이가 보였다. 절벽으로 떨어질까 두려워 그 모퉁이를 다시 돌아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다시 본 모퉁이에는 내가 걸었던 길이 여전히 있었다. 무너진 게 아니라, 그저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길에는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내 발자국이 남은 내 길은 절벽이 아니라 내 흔적이었다.
그 흔적을 더 사랑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고 원동력이 생기는 길을 찾는다면 내 모든 흔적을 지금보다 더 사랑할 수 있다. 그러려면 그 길을 내가 골라야 했다.
그제야 그나마 나은 길이 아닌, 내가 달리고 싶은 길이 보였다.
어떤 모퉁이를 돌 때 설렐 수 있는 길이 보였다.
새로운 길의 모퉁이를 돌 용기를 얻고, 이전에 내가 돌았던 모퉁이를 사랑하고,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믿고, 선택하고 나아가는 것.
그 용기가 없으면 어떤 변화도 만들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내 안에 그 용기가 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알았고, 그 용기를 잃고 싶지 않다.
나는 앞으로 몇십 번, 몇백 번의 모퉁이를 돌며 살아갈 것이다.
그때마다 내가 최선을 다해 선택한 길의 모퉁이를 돈다면, 뒤에는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