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제대로 된 연애 한번 하지 않았던 그 시절이다. 그때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마음에 든다며, 다가오는 여자도 마다했다. 길을 걷다 나와 마주치며, 커피 한 잔 하자던 그 사람은 얼마나 황당스러웠을까?
"군대 다녀오기 전에는 연애할 마음이 없습니다"
그런 나를 보며 대학 선배는 내게 천년기념물이라 불렀다. 천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이상한 놈 정도의 뜻이었을 터이다. 만 나이 39에 들어서도 함께하고 있는 친한 후배들이 있다. 나를 포함해 4명이 함께 둘러앉은 술자리에서 한 여자 후배도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찐따네! 찐따"
물론 함께 앉은 남자 후배 2명에 대해서도 모두 찐따라며 놀려댔다. 정말이지 '찐따'라 불릴 수 있을법한 그 시절의 내가 들었다면 알량한 자존심에 벌컥 화를 냈을 것이다. 그 시절 잘 나가는 친구들을 떠올릴 때면 괜스럽게 작아지는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큰 아쉬움은 없었다. 선택되는 것보다 선택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삶의 방식에 후회가 없다면 그 또한 거짓일 것이다. 다만, 그 후회가 떠오르지 않을 만큼 선택한 삶에서 얻어가는 행복이 더 컸다는 것만이 위안이라는 말로 거짓을 대신해야 할 것 같다.
때문에 항상 다짐한다. 후회 없는 선택은 없으니, 내 선택에 책임을 지자.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기대감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선다. 때론 외부 요인에 의해 선택이 결정되기도 한다. 다만, 그 압력에 의한 선택마저도 내 결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때문에 항상 내게 질문한다.
"진선아, 네가 정말 원하는 것 맞지?"
"저 사람들이 저렇게 생각할까 봐 그러는 거 아니지?"
"너, 저 사람들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려도 후회 안 할 자신 있지?"
그렇다. 나는 정말 그 후배말과 같이 찐따였다. 내 결정에 너무나 많은 이유를 가져다 놓고 이쁘게 포장하거나 스스로를 옭아매곤 했다. 이제는 시원하게 인정할 수 있다. 너무 평범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제 와서 자신에게 미안한 것이 있다면, 그 젊고 어린 시절에 그런 족쇄를 채워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편으로는 그래서 더욱 자신에게 고맙다.
"진선아, 그래도 많이 컸다"
이렇듯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이야기들 속에서 평범한 고민을 가지고 성장했다. 패기 넘치는 학창 시절 남자라면 하나씩 가지고 있을 무용담 하나 없던 평범한 나였다. 동성로를 걷는 동안에도 그런 생각들이 가득했다.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거리. 저마다의 개성 넘치는 모습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안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들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할까?'
겨울도 잊어버린 따뜻한 연인들. 찬 바람을 뚫고 가는 진격의 학생들. 누군가의 어머니 또는 아버지보다도 그런 젊은 청춘들이 더욱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의 장면들이 각색 없이 기억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그날의 동성로는 내가 살아온 그리고 어쩌면 살아갈 세계와는 조금 동떨어진 곳이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평범한 10대와 20대를 지냈던 난. 정말 스스로 행복할 줄 몰랐다. 오죽하면 어머니가 그리 말하시곤 했을까?
"진선아, 넌 네 스스로를 참 불행하게 만들더라"
세상에 힘들 것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시절의 나를 만나더라도, 그는 내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을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때문에 그날 지하철을 타고 동성로에 도착해서부터 내가 무엇을 했는지 더듬으면 참 골이 아프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같은 길만 계속 맴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밖이 어둑어둑 해지고서야 서대구역 근처까지 걸어서는 식당 한편에 국밥 한 그릇과 소주 한 병을 시켜놓았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사장님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질 나쁜 사장님이었다.
"총각, 내가 싸게 알아봐 줄게"
"참 이쁜 아가씨가 있으니까. 좀 놀다가"
그러고는 소주 한 병을 더 시켜주었던 사장님이다. 지금보다 더 거절할 줄 몰랐던 나였다. 그저 혼자 궁상떨고 싶었던 그 시절의 나. 부추기는 사장님보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내가 더 답답하다. 시켜놓은 국밥도 아깝고, 소주도 아까운 나. 그냥 혼자 두길 바라며, 같은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사장님 정말 괜찮아요"
그 때문에 대구에 대한 기억이 썩 좋지 못했다. 한편으로 내 잘못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둠이 찾아온 서대구역 골목길 사이로 내 발걸음이 닿았던 곳들은 분명 대구시민들도 잘 가지 않는 곳일 것이다. 그럴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내가 만나 대화를 나눈 대구 사람들은 참 사리가 밝은 사람들이었다. 그럴 것이 분명했다. 그들의 눈은 지금 떠올려도 정말이지 반짝반짝하다.
'잘못하면 잡아먹히겠네'
술에 취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으로 결국 국밥만 다 비우고는 계산을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그 길 건너 맞은편의 찜질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그렇게 잘 잠들었다면 좋았을 것을. 역시, 지금 생각해도 그 동네를 선택한 내가 잘못 이었던 것 같다. 잠자는 동안에 이상한 아저씨가 A가 옆에 다가와서는 어찌나 무서웠던가. 근처에 다른 아저씨 B가 버럭 화내는 탓에 A가 놀라 내게서 떨어지지 않았다면? 별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어쨌거나 내게 있어서 이날의 심란함은 내 22살에서부터 30살까지를 뒤흔들었다.
거꾸로 신은 신발. 꼬인 매듭. 잘못 끼운 단추. 이들을 제대로 정리할 힘을 기르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 그것은 부모님과도 동생들과도 나의 지인들과도 스스로 관계를 정립하지 못했던 나였다. 그 상태로 생에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곳으로 들여보낸 내게 미안하다. 그날의 내게 사과하고 싶다.
"좀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해 미안해"
그리고 다시 한번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잘 이겨내 줘서 고마워"
그날의 난, 불안하게 흔들리던 나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 한채 칼바람 부는 영천으로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