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초고 (1차 Draft)
광주의 겨울은 따뜻했다. 2005년, 조선대학교 입학 후 맞이한 첫겨울의 폭설을 제외하면 그토록 많은 눈을 볼 기회도 없었다. 그러므로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 광주는 따뜻했다. 그 따뜻함을 뒤로하고 가입교 하루 전날 대구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 창문에 비친 내 얼굴과 손목에 찬 시계를 번갈아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꽉 들어 찬 우등버스가 좁고 구불한 고속도로를 따라 대구로 향하고 있었다. 생애 두 번째로 가보는 대구. 그 낯섦이 한 편으로는 불편했고, 또 한 편으로는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 잠이 들었다 눈을 떴다를 반복하며 그 감정을 고스란히 삼키고는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맡겼다.
면접을 위해 한 번 방문했던 기억을 더듬으며, 동대구 버스터미널에 내려 식당을 찾았다. 따뜻한 밥 한 그릇 못 먹을 형편도 아닌데도 가진 여비를 생각하며, 어느 식당에서 허기를 달랠지 고민했다. 지난번 방문 때는 곧장 영천으로 향했기 때문에 밥 먹을 생각도 못했다. 그 때문에 익숙지 않은 듯 주변을 둘러보다 한 식당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었다.
"대구에도 김밥천국이 있네"
한 시대를 주름잡았았던 식당이지만, 조대 후문에 즐비한 식당 중에서도 가장 기억이 좋지 못 한 곳이기도 하다. 그 김밥천국에서 끓인 라면 안에 천국에 먼저 발을 내디딘 바퀴벌레와 마주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은 아무리 노력해도 도통 지워지지 않는다.
"저기만은 피하자"
따뜻한 밥 한 그릇 못 먹을 형편도 아닌데도 어느 식당에서 허기를 달랠지 참 길게도 고민했다. 물론 가입교가 다음날인 이유로 내게 충분한 시간이 있었던 것도 한몫을 했다. 어쨌든 찜찜한 추억을 뒤로하고 다른 식당을 찾았다. 그러다 터미널 앞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는 국밥집이 눈에 띄었다. 줄 서서 먹는 것은 아니었지만 식당 안에 사람들이 가득한 것으로 보아, 식당을 바라보는 이들로 하여금 그 맛을 기대하게 할 수 있게 하는 모습이었다. 가격도 당시를 회상하면 5천 원을 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생각했다.
'더 싸면서 내 허기를 달랠 다른 식당은 없을까?'
당시 조선대학교 식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정말이지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만을 생각하며 운영했다고 말할 수 있다. 대학생 시절 3년 간 내 주린 배를 책임졌던 학식. 일반식은 1,500원을, 특식은 2,000원을 넘지 않았다. 특히, 공대 특식은 정말 맛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조금 더 맛있는 음식을 먹겠다고 후문에 위치한 식당들을 돌아다녀도 웬만하면 2,500원에 해결이 가능했다. 어쩌다 선배들이 사주는 감자탕이 참 기억에 남는 시절이다. 그렇게 한 끼를 해결하던 내 모습들을 떠올리며 식당에 들어섰다.
'흐음'
테이블에 앉아 메뉴판을 바라보다 또 한 번 생각에 잠겼다. 단 돈 몇 백 원, 몇 천 원이라도 아끼고 싶었기 때문이다. 국밥 가격은 4,500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의 난, 지금의 나 보다도 더 돈에 대해 궁색했다. 부모님이 그리 살라고 키우신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첫 째 아들이라는 굴레를 스스로 만들어서는 무엇이든 아끼려고 들었다. 사실, 정말 아껴야 할 때는 제대로 아끼지 못했기에 그저 지독한 '짠돌'이었다는 표현이 더 정직할 것이다. 어쨌든 국밥을 시켰다. 그리고 테이블에 주문한 국밥이 나오고 또 한 번 생각에 잠겼다.
'하아'
나도 모르게 어이없는 한숨과 탄식 함께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국과 밥이 따로 나온 것이다. 태어나서 아니, 적어도 22살 12월 겨울, 대구에서 이 국밥을 접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음식을 마주한 사례가 없었다. 내게 '국밥'이란, 그 이름 그대로 국과 밥이 함께 들어있는 음식을 말했다.
'그래서 국밥인데..'
"아저씨, 국밥에 밥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요?"
당시, 너무 당황스러워서 주인아저씨게 여쭸던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서는 국과 밥이 따로 나와요"
그렇게 기억한다. 대구에서 영천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기 위해 시내버스를 탑승했을 때를 떠올렸다. 전라도 사투리 섞인 말투에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을 말이다. 어쩌면 그날 버스 안에서 통화하던 내 모습에 불쾌함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당시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국과 밥이 따로 나오던 상황을 이해했다.
'그래, 이곳은 대구지'
그러고는 다시금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맹물을 들이켜는 듯 한 느낌. 돼지육수의 담백함도, 보슬한 밥의 구수함도 없었다. 전라도의 깊은 젓갈향과 강한 짠맛에 길들여진 내게 대구 음식은 모두 천연 그대로의 음식과 같았다. 어쩌면, 그 옆에 놓인 새우젓을 발견하지 못한 탓일지도 모른다. 글을 쓰는 동안에 겨우 떠오른 생각이다. 어쨌든 첫 대구의 음식은 정말 맛이 없었다. 그럼에도 배고픈 나는 그 두 가지를 섞어 직접 국밥을 만들어서는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들이켰다. 그리고는 긴 고민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동성로로 곧장 향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무엇이든 해야 할 것만 같은 날이었기에.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마치 군 입대를 앞둔 예비 훈련병처럼 말이다.
이것이 2007년 겨울, 그 끝자락에서 다시 시작하는 첫걸음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