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신념의 지표가 되어, 국방에서 지방으로
24년 12월, 나는 다른 전우들보다 늦은 전역 준비를 시작했다. 그 해 7월 진급 결과를 끝으로도 5개월이 지난 후였다. 어릴 적부터 군복을 입고 싶었던 만큼, 전역할 때까지 군은 나의 삶과 정체성을 대변했다. 때문에 미련으로부터 조직을 떠나 보내지 못했던 내가 빠르게 또 다른 거처를 찾은 것은 어찌보면 큰 행운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진급만을 목표로 사회에 대한 두려움 없이 15년을 헌신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상, 분명한 방향성
‘사회로 나간다’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어떤 역할로 살아가야 할지, 어디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 두려움보다는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이 앞섰다. 근거 없는 자신감 말이다. 그 나름의 이유도 있었다. 바로 분명한 방향성이다. 군복을 벗는다는 것은 단순히 신분이 바뀌는 일이 아니라, 삶의 사명과 방향에 큰 변화가 찾아오는 것이었다. 비록 미래의 내 모습에 더 이상 군복은 없겠지만, 내가 추구해온 삶의 방향 만큼은 변함없길 바랐다.
“난 세상의 영웅이 될거야.” 세상 사람을 구하는 초능력자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공공의 이익을 위한 일을 찾았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군복이었다. 3사관학교 생도 시절 꿈꾸던 ‘군인상’은 장병들을 ‘민주시민’으로 사회에 복귀시키는 것이었다. 그 ‘이상’은 군 생활을 해내는 힘이자, 어쩌면 내게 가장 큰 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 “국민 곁에서, 공공을 위해 일하자.”라는 ‘신념’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원하는 미래가 뚜렷하다면 분명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다만, 지난 15년을 이어받아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한 ‘탐색과 분석’의 과정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현실, 불편한 진실
취업의 정석은 자신의 능력에 맞는 시장을 탐색하는 일이다. 자신을 상품 진열대에 올리고 가격을 매기는 일은 참으로 어려웠다. 지난해 10월, 국방전직교육원 전직기본교육에서 진행된 각 프로그램은 내게 물었다. “넌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어?”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내 민낯을 마주하는 일은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7장의 출력물에 정리된 15년의 군 생활. 근무경력과 상훈사항 그리고 자격증. 만 38세의 홍진선은 군에서 받은 표창과 상장 55장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자격증 하나 없이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는 사실. 진급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위안을 뒤로하고 진실과 마주한 순간, 비로소 내가 사회인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그럴수록 지금까지 집중해 온 일에 더욱 집중해야 했다. 손자병법에도 있지 않은가? 무중생유(無中生有) “지혜로운 자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없어도 있는 것처럼 보여라.” 굳이 덧붙이자면 군 생활도 그랬다. 성과 없는 일을 싫어했던 나는 지난 15년을 4권의 파일철로 정리했다. 군 생활의 성과뿐만 아니라 사회 동아리, 강사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모두 담은 나의 기록이다. 가진 것이 적었기에 해야할 것은 더욱 분명했다.
군 생활은 표창과 상장을 토대로 △정신전력교육 △홍보·공보 △문화예술 △기록 등으로 세분화하고, 사회 경험은 수료증과 기사 등을 중심으로 그 과정에서 성과와 기여도를 정리했다. 언제나 삶에 최선을 다해온 사람이라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국방부/국직부대 모범장병’으로 선정된 이야기와 중앙매체에 실린 ‘미담사례’까지 말이다.
때문에 ‘현실’을 직시하기 전 자신이 원하는 ‘이상’을 분명히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한번 더 강조하고 싶다. 군 생활의 이력을 사회로 옮겨줄 새로운 직군, 나의 과거가 미래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줄 하나의 다리를 찾기 위한 작업을 위해서.
이상과 현실, 내가 살아가는 현재
2022년, 나는 진급 3차를 앞두고 있었다. “진선아, 사단에서 함께 해보자.” 부족한 내게 참모님(김지상 중령)은 언제나 먼저 손을 내밀었다. 당시 나는 10년 넘게 지켜보던 갑상선에 “더 큰 병원에서 검사가 필요하다”라는 의사의 소견을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부대가 ‘월북사건’으로 바빠지면서 3차례 검사 시기를 미루게 되었다. 결국, 예정된 검사 시기보다 8개월이 지난 후에야 검사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암이 되었다. 나도 사단에 가고 싶었다. 진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보다, 나를 믿고 찾아준 참모님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분명 조직과 나를 믿어준 이에게 큰 피해를 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내 눈을 밝힌 것이 바로 ‘정책지원관’ 제제도였다 2020년, 32년 만에 지방자치법이 전부개정되면서 2022년 1월부터 각 지방의회에 ‘정책지원관 제도’가 도입되었다. 당시, 기초의회에서는 전문 인력이 의정활동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이 제도가 지방의회의 질적 성장을 이끌 것으로 기대되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진급을 위한 최선이 성과를 내지 못 했을 때, 이 모든 이력이 곧 정책지원관을 지원하기 위한 이력으로 만들겠다”라고.
군복과 계급장이 더 이상 나의 상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나는 새로운 미래를 그렸다. 그리고 결론은 더욱 명확해졌다. 국방에서 지방으로, 지방의회로 가자. 많은 이들이 국회나 광역의회를 우선순위로 두며 “큰 조직이 작은 조직보다 낫다”고 말했다. 더욱이 “큰 조직에서 작은 조직으로의 이직은 쉽지만, 그 반대는 어렵다”는 조언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지방이었다. 국방은 ‘창끝 전투력’이, 지방은 ‘풀뿌리 민주주의’가 핵심이다. 현실은 더 큰 조직을 가라고 하지만, 내가 살아온 세상의 ‘신념과 철학’은 가장 작은 조직부터 물결을 일으켜야 한다고 소리쳤다. 때문에 “국민의 곁에서, 공공을 위해 일하고 싶다.”라는 이상은 결국 나를 지방의회로 이끌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주권이 보장되는 나라의 시작은 바로 지방이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2025년 3월 31일, 전역식을 마친지 37일만에 목포시의회 정책지원관으로 임용되었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현재이다.
예고된 전역, 당신이 살아갈 미래
누구나 말할 수 있는 흔한 비법. “나의 전직 성공 비결은 세 가지였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은 이상 실현을 위한 확고한 ‘철학과 신념’, ‘목적지’ 그리고 내가 사랑했던 “군 경력과 경험” 뿐이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책 제목처럼, 나의 스펙은 군 경력뿐이었다.
분명한 목표 때문에 눈을 감고 귀를 닫았었고, 어떠한 교육도 조언도 허락하지 않았었다. 그렇기에 국방전직교육원의 진로교육과 전직 기본교육 그리고 소속 상담사님께 감사했다. 군 경력과 경험이 사회에서 통할까?’라는 걱정과 불안으로부터 도망치고만 있던 나를 현실로 불러주었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소개서 작성, 공공기관 직무 분석 등 내 경험을 어떻게 사회의 언어로 표현해야 하는지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나는 이 교육들 이후에야 제대로 된 자료 수집과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목표 기관(기업)에 대한 관련 기사, 정책자료 등을 스크랩하면서 내 역량에 맞는 스토리로 자기소개서를 써 내려갔다. 군의 기획과 보고서는 행정기획과 정책설득으로, 지휘소통은 조직협력으로 옮겨졌다. 이러한 연습 과정이 나를 정책지원관을 위한 준비로 자연스럽게 이끌었다.
특히, 교육 간 조언대로 ‘고용24’를 이용해 구직지원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 소속 상담원님의 도움을 통해 목포시의회에 제출할 자기소개서 작성을 지원받는 동안에는 국회를 비롯한 일반 기업과 육군 군무원에도 지원했다. 그 덕에 감사하게도 대부분 서류 면접에 합격했다. 그것은 자신감이 되어 다음 도전의 양분이 되어 주었다.
다만, 어떤 결과에도 목적지는 ‘목포시의회’ 한 곳 뿐이다. 연봉, 근무지, 업무여건 등 모든 이점을 놓고 가장 원했던 곳, ‘목포시의회’을 선택한 것이다. 이것이 이 글을 마주하는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은 말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그 과정에서 나를 증명해라. 남들이 뭐래도 당신만의 철학과 신념으로 살았지 않은가? 어차피 모두가 같은 방법으로 취업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것을 쟁취하라”
맺음말
고향 목포는 내게 과거 태생의 뿌리이자, 현재 삶의 터전이며, 먼 훗날의 미래이다. 장병들이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군에 입대하면서 시작된 공공의 길이 이제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지방에서 뿌리내리고 있다.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하루하루가 현재의 나를 만들어내며, 내일을 살아갈 힘을 비축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진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드는 여정’이 될 것이라 믿는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철학과 신념’이 삶의 나침반이 되어, 앞으로의 길을 나아가길 소망하며 이야기를 마친다.
[2025년 전직성공 사례집 수록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