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지재 Jan 04. 2022

설악산 이야기 6 - 유재석 프로젝트 2

공이 아닌 백



사람들은 ‘유재석’ 키워드에 다들 재미를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이상의 깊은 관심은 역시나 없었죠. 코로나 시국에 다들 지쳐 있는 와중에 소외된 자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여력이 있겠는가 하는 어떤 지인의 이야기는 참으로 일리가 있었습니다. 차라리 연극배우나 시나리오 작가 등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조명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니겠는가 하는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의지와 가능성이 충만한데 경제적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으니까요. 스우파처럼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에도 더 나으리라고 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밀어 부쳐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오기가 샘솟았습니다. 우리는 회의를 거듭했습니다. 수개월에 걸친 장기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계획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주력했습니다. 크라우드 펀딩, 기업 후원, 후원 계좌, 아프리카 tv 별풍선 후원 등 여러 방안이 나왔습니다. 별풍선이나 후원 계좌를 여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마음이 가지는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기업 후원은 불투명했지만 도전해볼 만했습니다. 평일에는 콘텐츠를 만들고 주말에는 노가다를 하면서 프로젝트를 이어 나갈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때부터 관계가 조금씩 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허황된’ 이야기, 즉 현금흐름을 즉시 발생시킬 수 없으며 당장 큰돈을 들여야만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제 선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고 잘라냈습니다. 동료들은 기가 죽어 ‘죄송하지만..’, ‘이건 제 생각에 불과하지만..’ 하는 말을 내뱉는 빈도가 잦아졌습니다. 모두가 입을 닫고 침묵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소통이 부재한 시간 속에서 패잔병처럼 풀이 죽었고, 가슴에 나름의 분노를 한 움큼 안은 채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았습니다. 내가 너무 보수적이고 방어적으로 움직이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는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갖춰진 상태에서 시작했던 적이 있던가 싶기도 했고요. 일단 부딪치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거칠지만 가장 나 다운 방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팝콘처럼 터져 나오는 모든 아이디어를 채택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끝이 곧장 보이는 것 같았거든요.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처참하게 느껴졌던 건 동료들의 표정이었습니다.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푹 수그린 저들의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사이에 언제부턴가 모종의 권력관계가 형성되어 있었구나, 그래서 나는 알량한 권위에 기대어 저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억누르려고 했구나 하는 생각에 다다르자 견딜 수 없는 자기 혐오감이 올라왔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옳지 않았습니다. 저라는 사람에게는 관계가 틀어지면 다 틀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든 구상을 다 집어치우고 리어카 하나 사서 군고구마를 팔더라도 이대로 밀어붙이는 것보다는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방문을 벌컥 열고, 저벅저벅 저들 앞에 섰습니다. 이미 두 친구는 몹시 어두운 표정으로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지요. 작은 방을 가득 채운 적막감에 숨이 막혔습니다. 나의 작은 그릇이 들통난 것만 같아 민망함에 얼굴을 마주 볼 수 없었습니다. 간신히 입술을 떼어 이야기했습니다.



“우리 지금 너무 재미없지 않냐?”



이곳 설악산에서 어떤 대단한 구상을 완료하고 서울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강박이 제 안에 있었으며, 또한 나를 믿고 찾아와 준 사람들에게 실패를 안겨주고 싶지 않은 부담감이 컸다는 고백을 덧붙였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서두를 필요가 없으니 쉬어 가자고 하면서요.



저의 고백에 저들은 놀랐습니다. 저들이 제 방에 쳐들어와서 늘어놓고자 했던 이야기를 제가 먼저 찾아와서 똑같이 이야기했다고 하면서요. (하…팀웍…) 서로의 안면에 희미한 미소가 스멀스멀 피어났습니다.



우리는 아쉽지만 모든 계획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적어도 여기 있는 동안에는 어떠한 판단도 섣불리 내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성장이 자연스레 성공을 가져오는 것이니 지금은 오로지 성장에만 집중한다, 그 말과 함께 우리는 그간 우리를 잠시나마 몰두하게 만들었던 공동의 목표를 새하얗게 잃었습니다.



그렇게 길을 잃은 우리는 다시 광야에 던져졌습니다.


(7부에 계속)

작가의 이전글 설악산 이야기 5 - 유재석 프로젝트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