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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지재 Oct 18. 2021

7번 국도에서 생긴 일

서른한 살, 어느 파산자의 일기

인간이 느끼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가 파산이라고 한다. 서른한 살, 나는 파산했다. 엄밀히 말하면 파산(진)이다. 빚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지 한참 되었다. 열정 하나 믿고 꿈을 향해 나아가려 애썼던 결과물이 고작 이거다.


직업군인으로서의 삶을 청산하고 작년, 서른의 나이로 세상에 나왔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은 완전히 뒤바뀌어있었다. 외국의 여러 곳을 떠돌려 준비했던 모든 계획은 강제로 백지화되었다. 어쩔 수 없었다. 새롭게 바뀐 상황에 맞게 나의 계획을 새롭게 수립해야만 했다. 언젠가 거리로 다시 나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요리와 영화를 공부했고, 자그마한 영화 사업을 잠시 시도하기도 했다. 여러 온라인 부업을 통해 현금 흐름을 만들어두려 애썼다. 관련 강의와 도서 구입에 천만 원 이상을 썼다. 유의미한 결과는 없었다. 대리운전과 배달,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삶에 딱히 도움 되는 일은 없었다. 다가오는 결제일에 대한 압박만이 내게 남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나 곰곰이 생각해본다. 부대에서 세상살이를 준비하라고 시간을 줄 때 그렇게 했어야 할까. 나는 군인으로 사는 마지막 날까지 총을 놓고 싶지 않았다. 미래를 준비한답시고 장비를 반납하고 훈련에 열외 한 채로 사무실에 혼자 남고 싶지 않았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세상에 나온 대가는 혹독했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떳떳함만은 가슴속에 남았다.


학교를 그만둔 것이 문제였을까. 잘 다니던 성균관 대학 철학과를 중퇴했다. 엄밀히 말하면 무수한 학사경고와 휴 복학을 반복한 끝에 미복학 제적이 되었다. 취업을 위해 대학 간판에 기대어야만 한다는 것이 내 가치관과 맞지 않았다. 그럴 바에는 세상을 떠돌며 살아있는 날것의 세상을 몸소 체험하는 편이 내가 원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간판 없는 고졸의 학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었다. 모든 일이 돈은 적게 받으면서 힘들고 고됐다. 그래도 학교로 다시 돌아갈 것이냐? 아니올시다. 교과서와 학점과 성적 경쟁, 취업 경쟁에 내 인생의 답이 있지 않다.


지나온  모든 선택에 대해 만약이라는 가정법을 대입해봐도 도무지  나은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모든 선택은 당시의 내가   있는 최선이었다. 모든 선택은 나 스스로 했다. 원망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의 선택을 나다운 방식으로 책임져보자. 그런 마음으로 나는 지금 동해바다 7 국도 어딘가에 있다. 차에 백여 권의 책과 텐트, 침낭 간단한 옷가지, 그리고 취사도구를 싣고 홀연히 떠나왔다.


이곳에서 나는 실로 오랜만에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예정이다. 생존에 허덕이며 사느라 책을 읽고 글을 쓰지 않은  너무나 오래되었다. 생각이라는  없어졌고 글이 원활히 흘러나오지 않는다. 감정 또한 무뎌져 풍경과 사람을 보고도 느끼는  없다. 읽고 쓰지 않는 동안 나는 죽은 채로 살아왔다.


오늘 내 가슴속에 앞날에 대한 조바심과 걱정만을 품고 있다면 내일의 내 모습 또한 조바심과 걱정으로 가득할 것이다. 결제일에 대한 걱정으로 가슴을 가득히 채우기엔 내 젊음과 재능이 아깝다. 내 가슴속에 채워야 할 것은 오직 열정과 영감뿐이다. 그것이 나에게 다른 미래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는다.


이곳에서 머물며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원 없이 읽고 쓰기만 하고 싶다. 가끔 낚시하고 노래를 하고 수평선 너머 저물어가는 해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싶다. 혹여나 이 길 위에서 객사할지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나다움을 잃지 않은 채로 떠나고 싶다.


그러한 여정의 기록을 여기에 담는다. 성공을 전시하는 시대에서, 나 하나쯤은 실패를 전시해봐도 좋지 않겠는가. 모든 실패는 가슴속 꿈이 죽지 않고 살아있는 한 일시적 실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고작해야 나 자신이 그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시험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전시하는 것이, 비슷한 상황에 처한 누군가에게 힘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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