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노이드 파크(2007) 후기
*<파라노이드 파크>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paranoid’에는 피해망상적인, 편집증적인이란 뜻이 있다. 영화의 내용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주인공이 아무에게도 그 사실을 털어놓지 못하지만 죄책감에 괴로워한다는 설명만 읽었을 때는, 주인공을 향해 점점 좁혀지는 수사망이나 불안감으로 인한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상상했다.
막상 영화를 보니 전혀 아니었다. 영화에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나오고 이는 주인공을 불안하게 하지만 비중은 거의 없다.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고는 있으나, 특별히 살인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주인공을 보았을 때 살인으로 인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거라 생각할만한 모습은 아니다. 부모의 별거나 친구, 여자 친구로 인해 고민하는 청소년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는 관객에게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살인 후에 비해 살인 전 주인공의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관객은 주인공의 예전 모습이 어땠는지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살인 전후로 극적인 변화가 주인공에게 생겼다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주인공이 사람을 죽인 것을 아는 관객들조차도 주인공을 평범한 청소년으로 느끼게 만든다.
살인 사건 자체가 영화에서 그리 강조되지 않는 것 또한 주인공을 평범하게 느끼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영화는 그저 주인공 일상의 단편을 보여준다. 잔잔한 음악과 함께 나오는 영상은 살해범의 일상이라기보다는 고등학생의 브이로그 느낌이다.
이 때문에 살인 장면이 나오기 전 영화 초반부를 보면서 시놉시스와 영화 초반부 연출은 관객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닌지 고민하기도 했다. 사실 살인을 저지른 것은 다른 사람으로 주인공은 모종의 사유로 인해 살인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증언하지 못하는 거다. 물론 아니었다. 주인공이 죽인 것 맞다.
사실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경비원 살해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한다. 영화에서 살해는 그저 청소년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떠한 사건의 은유일 뿐이라 생각한다. 이 사건은 객관적 입장에서 볼 때 살인이나 전쟁, 기아 문제 정도로 강렬한 일일 필요도 없다. 당사자에게 큰 일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만 그것 치고는 살해 장면은 다소 잔인하게 연출된다. 일의 심각성을 느끼게 할 강한 한 방이 필요했던 것일까?)
이에 따라 충격적인 범죄극은 펼쳐지지 않는다. 영화는 주인공이 써 내려가는 편지를 따라 그저 걱정거리를 안은 학생의 하루하루를 보여줄 뿐이다. 주인공에게 핸드폰이 없다는 것과 경찰이 학생들에게 시체 사진을 그냥 보여준다는 설정이 더 충격적이었다. 이것이 2007년인가.
신기했던 것은 별다른 스토리가 없었는데도 지루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마음속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모습이 묘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고민이 생겨도 평범한 매일을 살아가야 하고, 마음속 말을 편지를 통해 털어놓고 싶어 하지만 결국 홀로 불태워버리는 모습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잔잔한 배경음악 또한 장면과 어우러져 좋았다.
Paranoid Park
세 줄 요약: 살인 사건은 청소년의 불안에 대한 은유.
이거 굳이 살인했단 설정 필요한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라 지루하진 않았다.
별점: ★★★ (3/5)
재관람 의사: 딱히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