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에 쓰는 두 번째 편지
열두 달 중 가장 다채로운 10월입니다. 당신은 이 달에 어떤 기억이 있나요? 걷기 좋아서인지, 분주한 달이어서인지, 저는 걸어 다닌 기억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같은 시간, 같은 환경에 있더라도 모두가 느끼는 경험과 감정은 다 다르겠죠. 저는 10월의 많은 경험 중에서 따듯함과 감사했던 동네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삶을 예찬해볼까 합니다.
글 곳곳에 당신의 세계도 아름답게 볼 수 있는 저만의 시각을 녹색 글씨로 알려 드릴게요.
개천절과 한글날의 10월
이 푸르고 공활한 하늘 높이 흩날리는 태극기가 10월의 태극기 위상을 높여주는 분위기에 한몫하는 것 같습니다. 걷기 좋은 날씨가 한창인 이 달에는 한 번이라도 더 야외 활동을 하기 위해 괜히 밖에 나가곤 합니다. 동네 한 바퀴를 걷기도 하고, 카페 데이트 대신 공원 데이트를 하기도 하고요. 이 날 저는 밖에 나가기 위해 주말 아침 샌드위치를 테이크아웃했습니다. 무엇을 하던 동네를 돌아 집에 들어가게 되는 하늘과 날씨입니다. 늘 멈춰있는 것 같은 계절인데 변하는 것을 보면 신기합니다.
긴 연휴는 없지만,
휴일 혹은 대체공휴일이 2주 연속 있는 이 달은 연휴 전날의 설렘을 두 번이나 만끽할 수 있습니다. 연휴 전날 퇴근 후 저녁은 무척 소중하죠.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면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분을 느끼실 수 있습니다. 동네 공원과 단지가 이어지는 골목길이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동화 같아요.
물드는 나무와 함께 마음도
초록 잎에 내리쬐는 황금색 햇살이 닿아서인지, 잎새가 노랗게 물든 것인지 헷갈립니다. 아마도 그렇게 눈치채지 못하도록 노란색으로 물들어 가나 봅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노랗게 변해가는 세상에 마음도 덩달아 따듯해집니다. 감사할 거리를 찾아보려 하지 않았는데도 일 년을 잘 살아냈다는 마음에 감사해집니다. 제 마음이 따듯해지듯이 다른 이들의 마음도 따듯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감각으로 환영하는 가을
곡선으로 말려 물든 잎새는 낙엽이 되어 떨어집니다. 이제는 길거리 곳곳에 부지런한 이가 만든 낙엽 동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푸른 하늘에는 초록부터 노랑, 주황, 붉은색의 옷을 입은 나무가 눈을 즐겁게 합니다. 길거리에는 노랗고 동그란 작은 지뢰들이 가을의 향기로 코를 찌릅니다. 사각사각- 걸으면 밟히는 길거리의 낙엽이 귀로 듣는 가을을 완성시킵니다. 감각으로 가을을 음미해 볼 수 있습니다. 다채롭게 물든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이 드는 충만한 마음과, 떨어지는 잎새를 보는 것만으로도 떨어지고 상실하는 것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들게 됩니다. 여름의 안녕에 아련해지던 마음은 그제야 "가을이구나-" 완연한 가을이 왔음을 받아들입니다.
서늘하다고 마음이 식은 것은 아니다.
긴 팔을 입고, 겉옷을 챙겼지만 아직 낙엽의 색을 물들여야 하는 가을 햇살은 따듯, 따갑기까지 합니다. 얇은 긴팔 아래로 넘나드는 바람과 비추는 햇살이 기분 좋게 해 줍니다. 서늘하기만 하고 공활한 하늘과 따가운 햇살이 없었다면 이 10월의 분위기는 없었겠죠. 짧아진 해이지만, 짧아진 시간 동안 강렬하게 내리쬐는 노란빛과 기다란 그림자의 모양이 온 세상을 메웁니다.
기억 속의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않겠어요.
10월은 늘 바쁜 달이었습니다. 대학생 땐 중간고사와 졸업전시를 하느라, 직장인일 땐 다음 해 프로젝트를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날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감사한 마음이 기억나는 것을 왜일까요. 아무리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와도 동네는 여전히 찬란하고 기분 좋은 가을의 풍경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변함없는 동네의 차분한 모습, 자연의 광활함이 저를 감사한 마음으로 이끌었습니다. 그 마음이 들었을 때 소리 내어 감사하다- 표현하거나, 예쁘다- 감탄하면 내면에 있던 마음은 외부로 까지 펼쳐져 더 풍성한 마음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10월은 늘 바쁘고 정신없고 분주하던 달이었지만, 기억 속엔 감사하고 풍성한 달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머지않아 기쁨의 날이 오리니
현재는 언제나 슬프고 괴로운 것.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사는 것.
그리고 또 지나간 것은
항상 그리워지는 법이니.
-알렉산드로 푸시킨
분주하고 서늘하지만 풍성한 자연을 보고 감사의 마음도 느껴지는 10월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푸시킨의 시입니다.
당신의 10월이 계절이 주는 풍성함을 온 감각으로 느끼고, 서늘하지만 온 세상이 노랗게 물드는 때는 감상하며, 떨어지는 낙엽에 발걸음을 옮기며 감사를 고백할 수 있는 그런 달이 된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