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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는 돌아오는 길에 있었다

by 홍주빛

배려는 돌아오는 길에 있었다

글/홍주빛



왕복 2차선의 지방도로. 외출을 마치고 급히 학교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목적지를 7~800m 앞둔 지점에서 아주 천천히 달리는 차량을 뒤쫓게 되었다. 은회색 벤츠. 도로는 좁고, 추월하기엔 애매한 구간이라 조심스럽게 뒤따라갔다. 좀처럼 속도를 내지 않는다.


순간, 어떻게 할까 망설이다가 문득 좋은 묘안이 떠올랐다.

‘저 차 안에는 내 어머니와 아버지가 타고 계시다. 아버지가 기력이 달려 천천히 운전하고 계신 거야.’

나름의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았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래, 조금 천천히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하는 여유가 마음에 자리했다. 느린 차량을 억지로 앞지르려다 서로에게 불행한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평안을 되찾고 달리다가, 곧 갈림길에서 벤츠는 직진하고 나는 좌회전해 나왔다.

‘조급하지 않게 마음먹은 게 잘했구나.’ 생각하며 무르익어 가는 가을 들판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농로 끝에 택배 트럭 한 대가 나를 기다리며 멈춰 서 있었다. 충분히 넓은 신작로도 있었지만, 조금이라도 빠른 길을 택하겠다고 내가 먼 거리에서 진입하는 모습을 보고 먼저 멈춰 기다려준 것이다.


순간, 마음이 울컥했다.

택배 차량 운전자야말로 시간을 다투며 살아가는 분일 텐데, 나를 위해 잠시 멈춰줬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운전석에 앉은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고개를 깊이 숙여 목례했고, 짧은 크락숀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조금 전, 느린 차량의 운전자에게 배려를 베풀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하며 달려오던 길이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이미 누군가의 배려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주고받았으니, 내가 일방적으로 베푼 배려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으니, 감사할 하루였다.


살다 보면 가끔,

‘왜 나만 참아야 하지?’

‘왜 나만 배려해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의 일을 통해 깨달았다.


그때마다 잊고 지냈을 뿐,

늘 누군가는 나를 위해 배려하고,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있었음을.


나만 배려하는 게 아니다.

누군가도 나를 배려해주고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부드럽게, 둥글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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