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홍주빛
"저거, 맛있을까?"
텔레비전 속 음식 장면을 바라보며, 아흔을 넘긴 아버지는 어머니께 조용히 한마디 툭 던지신다. 짧고 담백한 말. 하지만 그 말은 언제나 주문이 된다.
어머니는 이른 아침 장을 보러 나가시고, 그날 저녁엔 꼭 그 음식이 식탁에 오른다.
“어제 네 아버지가 이걸 주문하셨지. 꼭 팥쥐 엄마 같다니까. 드시고 싶은 게 왜 그렇게도 많을까.”
어머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타박 같지만, 정이 깊다.
아버지는 고기를 좋아하신다. 어머니는 나물이나 채소면 족하다. 두 사람의 식성은 정반대지만, 식탁의 중심은 언제나 아버지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지만, 어머니는 늘 그렇게 해오셨다. 결혼이란 참, 묘한 사랑의 형태다.
며칠 전 오일장이 선 날. 퇴근해 돌아오니 식탁 위엔 훈제 돼지고기가 그윽한 향을 풍기고 있었고, 바깥줄에는 말려가는 갈치와 병어가 조용히 바람을 맞고 있었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단팥빵도 보였다.
그날 아침만 해도 어머니는 “나갈 생각 없다”라고 하셨다. 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을까.
“네 엄마가 양파 모종 사러 간다더니, 모종은 안 사고 먹을 것만 잔뜩 사 왔더구나.”
아버지가 웃으시며 말하자, 어머니가 받아치신다.
“나는 원래 돈 쓰는 재미로 장에 가는 사람이야. 그냥 올 수 있나!”
그 말에 모두 웃었다. 며칠째 말수가 줄고 표정도 어두우셨던 어머니였다. 그날 저녁엔 목소리가 다시 밝아졌고,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얼굴에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어머니는 평소 경로당도 마다하신다. 아버지를 혼자 두기 싫어서다. 대신 혼자서 조용히 아프고, 우울해지기도 한다. 약을 드시길 권해도 “필요 없다”라고 고개를 젓는 날이 많아졌다. 그런 어머니가 시장 구경 한 번으로 맑아졌다는 게, 그저 감사했다.
그날 밤, 갈치 반찬으로 저녁을 먹고 욕실로 향하는 길. 식탁에서 “돈 쓰는 재미로 사 왔다”며 웃으시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그 순간의 표정은 소녀처럼 행복해 보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그리고 속으로 혼잣말을 남긴다.
어머니, 날마다 오늘처럼 웃으세요.
오일장엔 매주 다녀오시고요.
기분 좋은 장바구니, 가득 채워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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