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빛
“홍주갈비로 예약할게—”
문자를 보내고 잠시 기다리는데, 곧 답장이 왔다.
“홍주성 옆에 있는 횟집 어때~~???”
이미 엄마께는 여쭤봤었다. 누가 회를 드시고 싶어 하나 싶어서. 적어도 아버지, 엄마 두 분의 의사는 아니었다. 멀리 가기엔 힘들고, 가까운 곳에서 간단히 먹자고 하셨으니까.
“누가 회가 먹고 싶은데~”
다시 문자를 보냈고, 한참 후에야 답이 왔다.
“그냥 홍주갈비 예약했대. 거기서 먹자.”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막내 동생이 회가 먹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침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 엄마가 마음에 걸렸다. 이것저것 생각하다 문득 뷔페가 떠올랐다. 회도 있고, 고기도 있고, 채소, 과일까지. 그곳이면 뭐든 드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름이 도통 생각나지 않아 급히 검색을 해보았다.
‘쿠우쿠우.’
맞다. 예전에 한 번 간 적이 있는 곳.
곧바로 홍보 지도와 주소를 첨부해서 단체 메시지를 보냈다.
“여기서 먹자.”
부모님이 잘 드시기만 한다면, 연초이고 하니 비용은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 오늘은 이것저것 많이 드셔요.”
엄마는 “그럴게” 하셨지만, 썩 믿음이 가진 않았다.
아버지는 벌써 출발하셨고, 도착하셨다는 연락이 왔다.
다행히 주말임에도 지하 주차장에 자리가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차를 세우고, 엄마의 걸음에 보폭을 맞춰 천천히 걸었다.
뚝—뚝.
지팡이가 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공기 중에 메아리쳤다.
한 걸음 한 걸음, 버거운 싸움을 이어가시는 것 같았다. 안쓰러웠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뷔페는 3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복도 끝에서 막내 동생이 손을 흔들었다. 먼저 들어가지 않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식구가 함께 식당에 들어섰다. 부모님은 자리에 앉으시고, 자식 셋은 분주히 음식들을 날랐다.
두 동생과 함께 정성껏 음식을 골라 상을 차려드렸다.
하지만, 예상대로 부모님은 그리 많이 드시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기 몇 알, 푸딩 하나, 한입 크기의 케이크 조각 하나를 맛있게 드셨고,
엄마는 어묵 꼬치 두 개를 꽤나 적극적으로 드셨다. 그리고 식혜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동생도 많이 먹은 건 아니었다.
가족 단위 손님들로 식당은 점점 붐볐다.
색색의 음식들을 마음껏 즐기는 사람들 틈에서, 우리 가족은 조용했다.
부모님처럼 연로하신 분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마, 우리가 너무 늦게 모신 건지도 모르겠다.
10년 전이었다면, 더 멀리 있는 대형 레스토랑에도 모시고 갔었다.
그땐 아직 발걸음이 지금보단 가벼우셨고, 입맛도 있으셨다.
형제들은 얼마 전부터 약속을 정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한턱 내기로.
그런데 오늘은 그 어느 날보다 비용이 많이 들었지만, 만족도는 가장 낮았다.
음식의 양은 가장 풍부했지만, 정작 부모님이 드신 건 거의 없었으니까.
돌아오는 길, 둘째가 아쉬운 듯 말했다.
“다음 달부터는 우리 직접 장 봐서 집에서 해 먹자. 이건 좀 아깝잖아.”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둘째는 요리 실력은 장담 못하지만, 유튜브만 보면 요리사 뺨치게 잘할 수 있다며 큰소리를 쳤다.
그래,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런데, 왜 이토록 마음이 씁쓸할까.
다음 날 아침, 엄마가 말씀하셨다.
“어제 어묵, 참 맛있더라. 그래서 두 개나 먹었지~”
곁에 있던 둘째가 거들었다.
“엄마, 그거 하나에 만 오천 원도 넘었어요.”
“그래? 그래서 더 맛있었나 보다~”
어이없는 듯, 웃음이 났다.
올해 구순을 바라보는 엄마는 입맛도, 기억도, 의식도 서서히 흐릿해지고 있다.
그 비싼 뷔페 음식들 중에서도
엄마는 천 원에 하나씩 시장 한편에서 팔던 어묵 꼬치를 가장 맛있다고 기억하신다.
그것은 단순히 간식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었던 것,
배고플 때 허기졌던 몸을 채워준 따뜻한 국물 한 입.
그리고 이제는…
살아 있다는 감각, 그것이 아직 남아 있다는 증거.
어묵 한 꼬치에 담긴 기억은
이 겨울, 엄마의 식탁 위에서 다시 피어났다.
#수필 #엄마의 기억 #가족이야기 #음식에세이 #시간의 온기 #노년의 기억 #어묵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