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창업이라 부르는 시간

by 홍주빛

우리가 창업이라 부르는 시간

홍주빛


그들만의 세상이 있다


밝았습니다

맑았습니다

고요합니다


새내기는 새 식구,

선배는 모두 언니

기숙사는 생활관

식당은 먹터


배식하고

설거지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고

재활용품을 분리수거하며


하루는 예배로 열리고

저녁엔 마음을 꺼내놓는 시간

묵학에선 조용히 자신을 돌아본다

방식구끼리

‘하나 되기’라는 이름으로

함께 울고, 웃는다


치열한 논의와 회의

반짝이는 음악회의 탄성

서로 다른 빛깔의 향연

동아리 발표의 날들


항상 존댓말을 쓴다

어린 동생에게도 예외는 없다


존중은 규칙이 아니라

이 공동체의 숨결이다


채소포에서 흙을 묻히고

모내기와 벼베기를 하고

계란을 줍고

소와 양을 돌보며

학교 정원을 함께 가꾼다


그리고

조용히 배달되는

손 편지 한 장의 온기


전체가 한 몸처럼

낯선 얼굴이 친숙해지기까지

울고 웃던 시간의 열매


우물 안에서 대양으로

위대한 평민의 꿈

그 첫걸음, 창업

창업식 장면을 사진으로 찍고, 유화 처리한 것입니다


이 시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61회 창업식을 맞아 쓴 축시입니다.

졸업이 아니라 ‘창업’이라 부르는 이 시작은,

함께 살고 일하고 나누는 삶의 첫걸음입니다.

흙과 말, 편지와 웃음이 엮인 시간의 기록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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