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오늘만큼은 나에게로
누군가를 돌보는 자리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도 지치고, 책임의 무게도 깊어진다.
그런 하루 끝에 문득, 나 자신을 잃고 있지는 않았을까.
이 글은 ‘그 자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나에게 보내는
짧은 외출 같은 위로다.
그녀는 매일 두 개의 하루를 산다.
하나는 회사에서의 하루, 또 하나는 집에서의 하루다.
두 번째 하루에는 시계도, 퇴근도 없다.
연휴가 다가오면 사람들은 여행지를 고르고,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며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다.
그녀는 병원 응급실을 전전하고,
약 복용 시간을 체크하며 그날의 식사를 계획한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다만 마음 한편이 종종 답답해질 뿐이다.
어머니는 예전보다 감정의 풍랑이 잦아졌다.
말이 짧아지고, 때때로 감정이 날을 세운다.
그녀는 이해하려 애쓴다.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 잊고 며칠이고 찾다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야~” 하시면,
아버지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그렇게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해~!” 하고 한마디 내뱉는다.
어떤 때는 그녀가 찾아내고,
어떤 때는 오리무중이기를 반복한다.
흐려지는 기억을 붙잡아가며 어떻게든 살아내려 애쓰지만,
예고 없이 찾아오는 원인 모를 복통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 불안과 답답함이 말로, 한숨으로 새어 나온다.
그래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마음을 다잡는다.
하지만 모든 걸 다 받아낼 수는 없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감정을 삼키다 보면,
결국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요즘 그녀의 몸이 자주 말을 건다.
소화가 잘되지 않고, 없던 증상들이 하나 둘 생겨난다.
병원에서는 ‘스트레스성 증상’이라 했지만,
그녀는 안다.
그건 마음이 해결하지 못한 짐을
그대로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걸.
그녀는 어머니를 탓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주 떠오른다.
스물네 살에 시집와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온 어머니의 지난날.
그 누구도 “괜찮으세요?”라고 묻지 않았을 시간들.
어느 날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내 짐을 언제까지 지고 있어야 하나~” 하셨다.
그 말이 괜히 마음에 남는다.
그녀에겐 어머니가 그저 안쓰럽고, 속상할 뿐이다.
그녀는, 그 마음을 닮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이제는, 닮아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음을 느낀다.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그녀에게 기대는 부모님의 돌봄을
온전히 내려놓을 순 없어도,
잠시만 외출할 수 있다면 좋겠다.
부풀어 올라 터지기 직전의 풍선 같은 마음을
다 쏟아내고,
저 서해안 바다처럼
푸른 여유를 다시 채울 수 있는 하루가 있다면.
이 글은 지금도 누군가를 돌보며
자신을 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내는 조용한 위로다.
“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지만,
오늘만큼은 나에게로.”
홍주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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