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밑 그네

– 돌아온 제비와 엄마의 봄

by 홍주빛
처마 밑 그네의 제비


처마 밑 그네

-돌아온 제비와 엄마의 봄

홍주빛


점심 식사를 마친 뒤, 엄마는 말없이 식탁에 앉아 계셨다.

무엇인가 깊이 생각에 잠기신 눈빛이었다.

한참을 그러고 계시더니, 나직이 혼잣말처럼 말씀하셨다.


“아니, 쟤는 아직도 그냥 저 자리에 앉아 있냐.

집을 짓든지, 먹이를 구하러 가든지…”


엄마의 시선이 닿는 곳을 따라가려다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 1월, 엄마가 섬망 증세를 겪으셨던 일이 떠올랐다.

혹시 또 그런 건 아닐까.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엄마, 뭐가요?”


엄마는 시선을 고정한 채로 답하셨다.


“음, 저기. 추녀 밑에 앉아 있는 제비 보렴.”


나도 얼른 처마 밑을 올려다보았다.

정말로, 그 자리에 제비 한 마리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낯선 듯 익숙한 모습이었다.


“엄마, 제비네요. 새끼 제비일까요?

근데 집 지을 데가 어디 있다고…”


“벌써 며칠 지났지. 쟤는 매번 같은 자리에 저러고 있더라.”


엄마는 부엌에서 안방 침대로 자리를 옮기며 말씀하셨다.

나는 방문을 살며시 열어두었다.


“엄마, 문은 열어 둘까요?”


“그래라, 잠시 지켜보게.”


그러는 사이, 제비는 마치 우리의 대화를 알아듣기라도 한 듯

포르르 날아올랐다.


엄마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직이 중얼거리셨다.

“요즘은 제비 보기 힘들다는데…”


사실, 우리 안채의 처마 밑은 제비가 집 짓기엔 불편한 구조다.

그 제비가 앉아 있던 자리도,

얇은 철사 옷걸이를 길게 늘여 그네처럼 만들어둔 곳이라

집을 지을 수는 없는 곳이다.


제비가 돌아온 건 반가운 일이지만,

그 아이는 어디에 둥지를 틀 수 있을까.

요즘은 제비에게도 마음 놓고 집 지을 공간이 마땅찮고,

천적도 많다는데.


엄마는 제비가 있던 자리를 한참 바라보다

조용히 이불을 끌어당기셨다.


“저 아이, 작년에도 저기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말끝을 흐리시는 엄마를 보며 나는 문득,

그 자리에 앉아 있던 건 제비일 수도 있지만

엄마의 오래된 기억 조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온 제비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리고 지금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우리 집 처마 아래에서 아주 잠깐 쉬어간 그 아이가

언젠가 어딘가엔 따뜻한 둥지를 틀 수 있기를.

그 생각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돌아온 건 제비였지만, 머물렀던 건 기억이었다.”



그날 이후, 제비를 떠올릴 때마다

오래전 시인들의 목소리가 겹쳐 떠오른다.

마치 그들도, 내 엄마처럼

처마 밑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제비

박목월


제비는 물어온다

봄을 물어온다

흙벽을 쪼아

둥지를 짓고

이마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관동별곡 中

정철

제비도 날아들어

해마다 오는구나

옛 사람의 자취가

아니 그립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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