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5번 출구 앞
길거리를 지날 때마다 무수한 전단을 받게 된다. 내용은 보지 않는다. 다만 받을 뿐이다. 오늘 하루도 이 분들은 이 전단을 모두 건네야 집에 갈 수 있으므로. 이 한 장의 전단을 건네기 위해서 아침 아홉시부터 하루종일 다리가 부어 단단해질 때까지 서 있었으므로. 별거 아닌 종이 1장이 모여서 오늘과 내일의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으므로. 가난의 고리는 어떻게 해야 끊을 수 있는걸까. 끊는게 가능하긴 한 걸까.
광화문역 5번 출구 앞, 청계천을 따라 수많은 사람으로 발 디딜 틈 없다. 오랜만에 나들이 나온 모녀가 해사하다.양팔을 포갠 커플은 싱그럽다.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는 관광객들로 복잡하다. 출구를 빠져나와 종로 쪽으로 걷다 보면 사람들을 이끄는 각양각색의 식당이 다닥다닥하다. 식당 사이로 먹이를 옮기는 생쥐처럼 분주한 이들이 있다. 종로 음식점 전단을 나누는 사람들이다. 핑크색 조끼, 노란 목장갑, 빨간 선캡을 쓴 김순실(69) 씨도 그중 한 명이다. 햇수로 5년 차, 광화문 거리엔 항상 그녀가 있다.
일주일 내내 쉬는 날은 없다. 아침 열 시부터 밤 여덟 시까지 10시간을 거리에서 헤맨다. 음식점 두 군데서 각각500여 장의 전단을 건네받는다. 하루 내내 1,000장을 돌리려면 발품을 꽤 팔아야 한다. 온종일 서 있으면 다리가 퉁퉁 붓는다. 후텁지근한 땡볕은 매섭게 내리쬔다. 종일 전단을 비볐던 손가락엔 지문이 닳았다. 빨리 건네기 위해 마련한 골무는 온통 거무튀튀하다. 맨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그래도 부지런히 전단을 건네야 했다. 전단 한 장에 25원, 온종일 건네야 25,000원을 벌 수 있었다.
아침마다 제일 좋은 자리를 선점해야 했다. 길쭉한 거리에도 명당이 있었다. 광화문역 출구에서 오십 미터를 걷다 보면 마주하는 청계천 변 입구 어귀가 가장 좋았다. 청계천에 눈이 팔린 이들은 전단을 받지 않았다. 사람들은 매일 땅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거리에는 전단을 받을 사람도, 건네는 사람도 많았다. 사람들은 쉽게 전단을 받아주진 않았다. 밀어내거나 모른척하거나 가끔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다. 물론 정중히 사양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해선 한 시간에 50장도 건네기 힘들었다. 사람들의 발만 쳐다보고 움직여야 했다. 발이 가는 방향대로 손을 뻗어야100장 넘게 건넬 수 있었다.
그에게는 손녀가 있다. 손녀를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다. 딸과 사위는 핏덩이만 두고 사라져버렸다.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나이 많은 노인에게 일을 주는 곳은 없었다. 그나마 전단은 나이를 따지지 않았다.
나라에서 가난하다고 돈을 주기도 했다. 예전보다 꽤 올라 육십 만원 남짓 주었다. 나이가 많다고 돈 이십만 원을 더 받을 터였다. 노인들 주는 돈 받고 나니 가난하다고 주는 돈 이십이 줄었다. 육십만 원으론 생활이 안 됐다. 집에 마냥 있을 수는 없었다. 광화문역 거리로 나왔다.
광화문역 5번 출구 앞, 김순실 씨는 이곳에 있다. 사람들의 발을 따라가다 다른 사람과 채이기도 한다. 익숙해질 법한데 여전히 전단을 건네는 건 쉽지 않다. 그나마 사람들이 많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건넬 사람도, 건네는 사람도 많아 부끄럽진 않았다. 손녀가 좋아하는 꼬까신 하나 사 신기려면 한 장이라도 더 건네야 했다. 힘든 줄은 몰랐다. 다만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일단은 건네야 했다. 그쪽이 속이 편했다. 핑크색 조끼, 노란 목장갑, 빨간 선캡. 김 씨는 오늘도 광화문 거리에 서 있다.
#홍키자 #한줄홍키자 #경제기자홍키자